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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난해한 시를 물리학으로 해석하면?


GIST 연구팀, 물리학으로 풀었다

이상의 ‘진단 0:1’ 원문과 국문 번역시. [사진=GIST]
이상의 ‘진단 0:1’ 원문과 국문 번역시. [사진=GIST]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시인은 시를 쓰고 평론가는 자신만의 틀을 이용해 제각각 해석한다. 같은 시도 평론가에 따라 모두 다르게 파악된다. 평론가는 때론 혹독하게 때론 찬미하면서 특정 시를 평가하고 시인을 해독한다. 평론가를 넘어 이젠 시를 물리학적으로 해석하는 곳에까지 이르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연구팀이 이상의 시를 물리학적으로 해석한 논문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시인 이상(1910~1937년)의 연작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작품 중 하나인 난해시 ‘진단 0 : 1’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논문이 이상문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에 실렸다.

GIST 기초교육학부 이수정 교수와 미국 캘리포니아대 머세드(UC 머세드) 물리학 박사과정생 오상현 씨(GIST 졸업생, 물리전공)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이상의 시 ‘진단 0 : 1’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시공간에 관한 시라고 규명하는 논문을 내놓았다.

불연속인 표(왼쪽)에서 위의 표를 왼쪽으로 한칸 옮기고 아래로 한칸 겹치면 연속성(오른쪽)을 보인다. ‘진단 0:1’이란 이런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시인의 주문이라는 것이다. [사진=GIST]
불연속인 표(왼쪽)에서 위의 표를 왼쪽으로 한칸 옮기고 아래로 한칸 겹치면 연속성(오른쪽)을 보인다. ‘진단 0:1’이란 이런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시인의 주문이라는 것이다. [사진=GIST]

‘진단 0 : 1’이란 시는 가운데 점(·)이 대각선을 가로지르는 11행 11열의 숫자표와 마지막 문단에 ‘진단 0 : 1’이라는 표현 등이 등장하는 짧은 시이다. 그동안 이 시를 두고 행이 바뀔 때마다 10분의1씩 곱해지는 등비수열이라거나, 대각선을 사이에 둔 대립에 관한 묘사라는 해석 등이 있었다.

GIST 연구팀은 기존 해석에서 벗어나 물리학적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을 제안했다. 연구팀은 숫자표의 숫자를 시공간 좌표로 보고 ‘진단 0 : 1’이란 마치 종이를 말아서 양 끝이 이어진 원통형으로 만들듯 시공간의 경계를 연결하고 반복시키는 진술이라고 설명했다.

‘진단 0 : 1’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시공간적 배경을 설정하는 시라는 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시공간의 연결과 반복이라는 주제는 반복, 무한, 공포, 권태, 자아분열 등 이상 문학에 등장하는 다른 모티프와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주기경계조건 모티브는 작품, 게임 등에 응용된다. 총구가 원을 돌아 자신을 겨냥하는 작품(왼쪽), 오른쪽으로 나간 게임 캐릭터가 왼쪽에서 튀어나오는 사례(중앙), 무한히 이어지는 가상공간(오른쪽)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진=GIST]
주기경계조건 모티브는 작품, 게임 등에 응용된다. 총구가 원을 돌아 자신을 겨냥하는 작품(왼쪽), 오른쪽으로 나간 게임 캐릭터가 왼쪽에서 튀어나오는 사례(중앙), 무한히 이어지는 가상공간(오른쪽)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진=GIST]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연구팀은 ‘주기경계조건’을 도입했다. 주기경계조건이란 물리학 등에서 공간의 가장자리(경계)를 연결해 공간이 주기적 성질을 갖도록 하는 조건을 말한다.

예를 들어 당구대에서 당구공을 치면 경계면에 맞아 반대 방향으로 튀어나와야 하는데 이 경계를 넘어 계속 진행한다는 의미이다. 또 12라는 ‘법’으로 정해진 시계를 예로 들면 9시에서 4시간이 지나면 ‘9+4’는 13이 돼야 하는데 시계는 ‘12’를 주기로 하기 때문에 ‘13’은 ‘1’로 표시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연구팀은 ‘1234567890’이 무한히 반복되는 수열의 순환마디이자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시공간 좌표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같은 ‘주기경계조건 모티프’를 토대로 ‘진단 0 : 1’의 숫자표를 이어 붙여보면 숫자표의 경계 부분에서 숫자 배열의 불연속성을 볼 수 있다. 이 불연속성을 해소하기 위해 이상은 ‘진단 0:1’을 시의 맨 아래에 붙여 이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진단 0:1’에서 ‘ : ’은 기존에 대각선으로 배치됐던 사선의 두 가운데 점을 일렬로( : ) 정렬하기 위해 위쪽 ‘0· 1’을 왼쪽으로 이동시키는 첫 번째 단계에 대응한다. 다음으로 ‘0’과 ‘1’은 위아래로 배치된 0과 1 쌍을 하나의 0과 1로 만들기 위해 위쪽 ‘0· 1’을 아래쪽으로 이동시켜 포개는 두 번째 단계에 대응한다. [사진=GIST]
'진단 0:1’에서 ‘ : ’은 기존에 대각선으로 배치됐던 사선의 두 가운데 점을 일렬로( : ) 정렬하기 위해 위쪽 ‘0· 1’을 왼쪽으로 이동시키는 첫 번째 단계에 대응한다. 다음으로 ‘0’과 ‘1’은 위아래로 배치된 0과 1 쌍을 하나의 0과 1로 만들기 위해 위쪽 ‘0· 1’을 아래쪽으로 이동시켜 포개는 두 번째 단계에 대응한다. [사진=GIST]

이렇게 ‘진단 1:0’의 주문에 따라 이어붙인 숫자표의 상반부를 왼쪽과 아래쪽으로 한 칸씩 이동시켜 포개어 붙임으로써 연속성을 지니면서 해결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수정 교수와 오상현 씨는 “이번 연구를 통해 ‘진단 0 : 1’에 대한 새롭고 혁신적 해석을 제안했을 뿐만 아니라 주기성 시공간을 문학의 소재이자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상의 문학적 독창성과 전위성에 대한 이해를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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