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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4할 타자와 애플의 혁신 실종


"4할 타자는 왜 사라졌을까?"

야구계의 오랜 화두 중 하나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1941년 테드 윌리엄스가 4할6리를 기록한 이후 4할 타자의 명맥이 끊어졌다. 이후 기라성 같은 타자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4할 근처에 가는 것도 버거웠다.

이 때문에 야구계는 오랜 기간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가 뭔가?'란 질문과 씨름했다. 전문가들은 타자의 기량 약화, 투수의 기량 향상과 전문화 등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물론 어느 것 하나 '4할 타자 실종'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단 비판을 받았다.

야구계의 오랜 의문에 시원한 해답을 제시한 건 엉뚱하게도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였다. 굴드는 1996년 출간한 '풀하우스'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건 속설과 달리 타자들의 전반적인 타격 능력이 향상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게 야구계에서 널리 회자되는 '굴드의 가설'이다.

굴드가 이 가설에서 내세운 논리는 간단하다. 타자들의 전반적인 타격 능력이 향상되면서 표준 편차가 줄어들었다는 것. 4할을 웃도는 최고 타자 뿐 아니라 2할대 초반에 턱걸이하는 타자도 사라졌다는 것이 굴드의 설명이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접하고 싶은 분들은 굴드의 '풀하우스'를 참고하시라.)

◆'굴드의 가설'로 살펴본 스마트폰 시장의 혁신 실종

'굴드의 가설'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왜 혁신이 사라졌을까?"란 질문에도 그대로 적용해 볼 수 있다. 특히 애플이 아이폰을 발표할 때마다 단골로 쏟아져나오는 '혁신 실종' 비판에 대해 탐구하는 데 좋은 인사이트를 던져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 기자는 '굴드의 가설'과 똑 같은 이유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혁신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선두 주자인 애플의 실력이 줄어든 때문이 아니라, 스마트폰 시장 전반의 수준이 향상됐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 이론을 한 번 따져보자. 지난 2007년 아이폰이 처음 등장할 때 받은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떻게 스마트폰을 저렇게 만들 수 있을까?"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2010년 아이폰4가 출시될 때도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주변 동료들과 "3GS를 4로 저렇게 혁신할 수 있다니, 진짜 잡스는 대단하다"는 말을 주고 받았다.

기자 역시 그 때 이후 아이폰의 혁신이 실종됐다는 진단엔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아이폰4S, 5를 거쳐 5S까지 나왔지만, 사실 전체적인 매커니즘은 아이폰4에서 크게 진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선 아이폰의 혁신이 실종됐다는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에 대해선 일반적인 평가와 조금 생각이 다르다. 애플에 혁신이 사라진 건 스티브 잡스가 없어서도, 더 이상 혁신 유전자에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장 전반의 수준이 향상됐기 때문에 '4할 타율' 같은 깜짝 놀랄 혁신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게 내 생각이다.

스마트폰 시장을 냉정하게 한번 살펴보자. 초창기 스마트폰 시장엔 애플과 애플 이외 기업이란 두 개의 축만 존재했다. 애플이란 '무시무시한 4할 타자'가 맹타를 휘두르는 동안 다른 기업들은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 야구계에 비유하자면, 프로야구 원년 일본이란 외계에서 날아온 백인천 선수가 감독을 겸하면서 4할을 치는 동안 다른 선수들은 3할 언저리에 간신히 턱걸이하던 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후 시장 상황은 크게 변화했다. 이젠 안드로이드 진영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더 이상 애플이 혼자서 북치고 장구칠 수 있을 정도로 녹록한 상대가 아니다. 초기에 '카피캣'이란 오명을 썼던 삼성 역시 애플에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요즘 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가 나오기 힘든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됐단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애플에 혁신이 실종됐다는 비판을 쏟아내는 건 초점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스마트폰 시장에선 아이폰4가 나올 때처럼 애플이 모든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플에 "혁신은 없었다"고 비판하는 건, 김현수나 김태균 같은 선수에게 "왜 4할을 못 치냐?"고 비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젠 애플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 구글 등과 치열한 타율 경쟁을 해야 하는 선수라는 걸 명심하자. 그래서 난 애플이 아이폰 새 모델에 사상 처음으로 64비트를 채용하는 등의 '혁신'을 꾀한 부분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애플이 삼성, 구글 등과 벌일 치열한 경쟁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생각이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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