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독일의 산별 노조인 IG메탈 계열 자동차 노조들은 오래전부터 공급망 내 노동 기준과 협력업체 노동 환경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뤄왔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노조 역시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협력사 노동자의 재교육과 고용 안정 문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산별 노조를 중심으로 각 대기업 개별 노조와 협력업체까지 이렇게 연대하는 것은 단지 약자에 대해 시혜를 배풀기 위함이 아니다. 노조의 이익을 침해받지 않으면서도 생태계를 강화하는 생존 전략에 가깝다.
협력사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지나치게 낮게 유지되면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원청 업무를 끊임없이 외주화하려 들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은 원청 노동자의 일자리가 저임금 구조로 잠식되는 것을 막는 방어선이 될 수 있다.
공급망 관리 측면에서도 협력사와의 상생은 필수적이다. 처우 악화로 숙련 인력이 협력업체를 떠나면 품질 저하와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이는 곧 원청 생산라인 중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협력사 고용 안정과 경쟁력 강화를 함께 의제화하는 이유도 결국 자신의 일터를 지키기 위한 전략적 판단에 가깝다.
국내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과 삼성전자 노조의 대규모 파업 예고로 노동계의 목소리는 커졌고, 요구는 거침없지만,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귀족노조의 배 불리기'나 '국가 기간산업을 볼모로 한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판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대기업 노조들의 고액 성과급 요구는 사회적 논쟁 요소가 되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라는 명분만 취할 뿐, 지속 가능한 국가 산업 생태계 혹은 사회적 상생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는 비판도 함께 나온다. 노조는 본래 노동자의 이익 증진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사측과 협상 과정에서 처우 증진에 대한 요구를 하는 것 자체를 과도하게 힐난할 수는 없다. 다만 비판이 거세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비판에 설득력이 있는 것은 노조의 이율배반적 태도 때문이다. 사측을 상대로는 성과 배분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서도, 자신들보다 '을'의 위치에 있는 협력사 노동자 문제에는 침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요 대기업 노조 요구안 어디에서도 독일 노조가 오래 고민해왔던 연대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만약 노조가 독일의 노조처럼 수익의 일부를 협력사와 공유해야 한다거나, 협력사 노동자의 권익 역시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먼저 주장했다면, 여론은 지금과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노동권 강화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커졌지만, 노조가 그 권위에 걸맞은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이제 담장 밖을 보아야 한다. 원청의 울타리를 넘어 협력사 노동자의 권익까지 품을 수 있을 때, 노조의 파업은 집단 이기주의가 아닌 산업 생태계를 살리는 투쟁으로 격상될 수 있다.
/이한얼 기자(eo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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