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유림 기자] SM엔터테인먼트(SM)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카카오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김범수 위원장이 기업 문화를 이유로 SM 인수를 반대했던 정황을 변호인단이 제시했다. 김 위원장이 SM 인수를 위해 불법을 인지했다는 검찰 주장에 반하는 내용이다. 변호인단은 SM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보다 높게 설정할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했다는 검찰 주장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카카오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하이브의 SM 주식 공개매수 마지막 날인 2023년 2월 28일 장내매수를 통해 SM 주식 4.9%를 확보한 바 있다. 카카오 측 변호인은 지분 경쟁 상황에서 공개매수 기간 중의 장내매수는 정상적인 경영 행위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당시의 매매양태를 분석해 시세를 인위적으로 올리고 고정하려는 움직임은 없었음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2023년 1월 30일 회의에서 김범수 위원장 'SM 인수 반대'…왜?
18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5부(재판장 양환승)의 심리로 진행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장 모 카카오 투자전략실 팀장은 2023년 1월 30일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에 참석했다고 한다. 투심위는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과 카카오 대표 등을 비롯해 때에 따라서는 계열사 대표까지, 주요 경영진이 참석해 그룹의 주요 투자 사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카카오 내부에서는 '투자테이블'이라고 불린다.
검찰은 오래전부터 SM 인수를 계획해 온 카카오가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저지하려 했고 김 위원장은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시세조종 계획을 사전에 보고받아 승인했다고 봤다. 이에 대해 카카오 측 변호인은 김 위원장이 오히려 SM 인수를 반대했다는 점 등을 들어 검찰의 주장에 정면 반박했다.
제출된 증거에 따르면 장 팀장은 당시 회의에서 나온 발언을 일부 투자전략실 직원들이 함께 있는 메신저 대화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이날 김 위원장이 두 회사(카카오-SM)의 기업문화가 합쳐지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SM 인수에 반대하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이 공유됐다. 김 위원장이 SM 인수를 반대하는 취지로 말한 것이 맞는지 물은 카카오 측 변호인의 질문에 장 팀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날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이진수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대표에게도 회사의 아이덴티티(정체성) 변화와 관련해 이야기하며 '그래도 괜찮아?'라고 반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어떻게 이해했느냐는 카카오 측 변호인의 질문에 장 팀장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경우에도 웹툰 서비스(플랫폼) 카카오페이지를 운영하는 등 정보기술(IT)·플랫폼 사업을 해왔다"며 "하지만 SM을 인수하면 엔터테인먼트나 콘텐츠 사업 비중이 커지며 기존 사업에도 영향이 가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예상되는 전반적인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은 것으로 이해했다"고 답했다.
2023년 2월 7일에는 카카오가 SM과의 사업협력계약 체결을 발표했는데 하이브의 입장문(카카오-SM의 사업협력계약 비판, 2023년 2월 24일)으로 상황이 급변하면서 카카오도 대응 차원의 입장(기존 전략의 전면적 수정이 불가피해 모든 방법을 적극 강구할 예정, 2023년 2월 27일)을 내놨다. 이와 관련해 장 팀장은 "각 부서 직원이 여럿 모여서 입장문 발표를 준비하는데 내용을 상세하게 알지는 못해 혼란스럽기도 했다"면서도 "하이브에 대한 대응을 위한 것이었던 점은 맞다"고 답했다.
"지분 경쟁 속 물량 확보 위해 매수…정상적인 매수 행위"
장 팀장은 하이브의 SM 주식 공개매수 마지막 날인 2023년 2월 28일에 회사(카카오)에서 SM 지분 매수를 실행한 인물이다. 회사에서 SM 지분 매수를 직접 하게 된 이유와 관련해 장 팀장은 "원칙적으로는 외부에 발설하면 안 되지만 증권가에서 이런 일로 소문이 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일어난다"며 "보안상의 문제로 회사에서 진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라고 했다.
이보다 앞서 2023년 2월 22일 당시 하이브는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14.8%를 인수하면서 SM 최대 주주에 오른 바 있다. 카카오 측 변호인은 "당시와 같은 지분 경쟁 상황에서 (카카오가) SM 주식을 매수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 자체로 주가 상승의 요인이 된다"며 "SM 주식을 최대한 많이 가져야 하는 카카오 입장에서는 취득 단가가 올라가면 주식 수가 줄어드는 점을 고려해야 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한 시세조종 행위로 기소한 카카오의 매수 주문을 고가매수·물량소진·종가관여 등으로 판단했다"며 "그러나 카카오의 고가매수 주문은 전체 주문의 25%로, 다른 투자자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상승한 주가를 유지하려면 고가매수 주문을 반복적으로 제출해야 하는데 (카카오에서는) 매도 물량이 쌓이기를 기다리며 2~3분 간격을 두고 주문을 제출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물량소진 주문의 경우에도 전체 주문의 8.93%, 다른 투자자는 12.9%로 카카오보다 더 높은 점을 고려하면 카카오가 SM 시세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유림 기자(2yclev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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