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유럽 출장 후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삼성전자가 MX(모바일경험) 사업부를 시작으로 글로벌 전략 마련에 본격 나선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에 따른 한국 경제의 복합 위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전반적인 사업에 대한 어려움이 감지되고 있는 만큼 이번 회의를 앞두고 내부 긴장감이 더욱 높아진 분위기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날부터 오는 23일까지 DX(디바이스 경험) 부문의 '2022년 상반기 글로벌 경영전략회의'에 돌입한다. MX 사업부를 시작으로 22일에는 VD(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23일에는 생활가전사업부(DA)가 차례로 회의에 나선다. 오는 27~29일에는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이 회의를 진행한다.
이번 회의에는 본사 경영진과 해외 법인장 등 총 240여 명(DX 140여 명, DS 100여 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재용 부회장은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말에만 한 차례 전략회의를 진행했지만, 올해 다시 상반기 전략회의를 재개했다. 이는 2018년 이후 4년 만으로, 최근 악화하는 대내외 경영환경에 대한 삼성전자의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위기는 주력 사업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 등에서 전반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에선 올 초부터 4나노 공정의 수율(제조품 중 양품의 비율) 향상과 관련된 대외 우려 등이 끊이지 않았다. 또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를 위한 기술력 확보에 대한 의구심도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지난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반도체 담당 임원들이 직접 나서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까지 나섰지만, 결국 이달 초 반도체 관련 연구 임원들이 대거 교체되는 등 강경책이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연말 정기인사를 단행한 지 6개월 만에 부사장급 10여 명이 이번에 한꺼번에 교체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파운드리 등 미래 전략 분야에서 더욱 획기적인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사업 역시 불안한 상태다. 스마트폰 사업 정체가 이어지고 올 초 게임옵티마이징서비스(GOS)논란까지 일면서 소비자들의 신뢰가 떨어졌다는 점은 뼈아프다. 또 국내외 경기 악화에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삼성 스마트폰 판매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내부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올해 전체 스마트폰 출하량 목표 역시 연초 3억3천400만 대로 잡았다가 최근 2억7천만~2억8천만 대 수준으로 낮췄다.
이에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 경영진단을 지난해에 이어 최근에 또 진행했다. 이달 첫 주에는 최고경영진이 경영진단 결과를 두고 추가 논의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2년 연속 스마트폰 사업 경영진단에 나선 것은 모바일 사업이 비상 상황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일 이후 올해 연말에는 대규모 조직개편과 인사 교체가 단행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가전사업 역시 부진이 예고된 상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 코로나 봉쇄, 원자재·물류비 상승 등의 여파를 고스란히 맞을 것으로 보여서다. 특히 올 초 2억1천700만 대로 예상됐던 세계 TV 시장 전망이 최근 2억1천200만 대로 낮춰지는 등 전반적인 가전 수요 급감이 예상된다는 점도 내부에선 고민거리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외 스마트폰, TV·가전 사업에선 치열한 가격 경쟁에 성장세마저 주춤한 '레드 오션' 시장에 놓여 있는 상황"이라며 "반도체 사업 호황으로 올해 1분기까진 실적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스마트폰, TV·가전 등 다른 사업의 부진을 가리는 이른바 '반도체 착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반도체 시황이 꺾이게 되면 삼성전자 실적도 급강하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위기감은 클 것"이라며 "새로운 미래 사업 발굴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분위기 탓에 이 부회장도 지난 18일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시장의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에서는 못 느꼈는데 유럽에 가니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훨씬 더 느껴졌다"며 "시장의 여러 가지 혼돈과 변화, 불확실성이 많은데 우리가 할 일은 좋은 사람을 데려 오고 우리 조직이 예측할 수 있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삼성 전자 계열사 사장단은 이 부회장의 출장 후 첫 출근날 긴급히 한 자리에 모여 '기술 강화'를 중심으로 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는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3시까지 8시간 넘게 진행됐으며 이 부회장이 강조한 '기술'과 '인재', '상생'에 방점이 찍혔다. 회의에는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을 비롯해 최윤호 삼성SDI 사장, 황성우 삼성SDS 사장,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등 전자 관계사 경영진 25명이 참석했다.
또 긴급 사장단 회의 후 이날부터 진행되는 글로벌 전략회의에선 위기 타개 방안 모색과 함께 사업 부문별·지역별로 현안을 공유하고 하반기 사업 목표를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대응한 공급망관리(SCM) 혁신, 재고 건전화, 전사적 자원 효율적 운영 방안 등을 공통 의제로 내걸고 심도있게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DX부문은 원자재·물류비 상승 대응과 가전·모바일 간 시너지 향상 등을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또 신제품 판매 확대와 프리미엄 리더십 강화를 통한 수익성 확보 방안, 제조·품질 경쟁력 강화, e스토어 등 온라인 채널 성과 극대화, B2B 판매 강화 등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 마련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DS부문은 미국 텍사스주 파운드리 공장 건설 상황과 D램 가격 하락에 따른 수요 부진 여파 등을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또 올 하반기와 내년 글로벌 반도체 시황을 전망하는 한편 고부가가치 메모리 반도체 판매 확대 방안, 파운드리 글로벌 신규 수주 확대 방안, 중장기 기술 개발 로드맵, 국내외 투자 계획 실행 방안 등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관계자는 "지난달 45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만큼 이번 회의에서 이를 실행할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빅테크와 대형 유통 업체, 반도체 장비, 디지털 광고 업체들은 일제히 매출 둔화 및 마진 하락 가능성에 대한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며 "점점 높아지는 금리는 결국 누적돼 올해 하반기 후반부터는 세계 경제에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분위기로 인해 기업들의 국내외 사업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금 위기를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전략 회의에 나선 삼성의 긴장감도 극에 달한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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