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건희 회장보다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뛰어넘다)'한 인물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늘의 별이 된 한국 경제를 이끈 거인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두고 고교 동창인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은 28일 오전 영결식에서 이렇게 추모했다. 김 회장은 고인이 위대한 기업가로 성장하기 전 어린 시절에 비범함과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몰두하는 모습, 반도체 산업 진출을 아버지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에게 진언한 일화 등을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이 회장이 일본 도쿄 유학시절 지냈던 2층 방이 전축, 라디오, TV로 가득했다고 전했다. 또 이 회장이 이를 모두 분해해 재조립하고 있던 모습을 본 이 부회장의 고교 은사 한우택 선생님의 경험담도 소개했다.
이 같은 모습은 이 회장이 삼남임에도 불구하고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후계자로 낙점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됐다. 이 회장은 첫째 형인 CJ그룹의 이맹희 회장, 둘재 형인 새한그룹의 이창희 회장을 제치고 지난 1987년 2대 회장에 올라 당시 재계 인사들을 놀라게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맹희 회장과 이창희 회장이 부친 이병철 회장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탓도 있다"며 "하지만 삼성 특유의 '능력 우선 주의'가 후계자를 정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 회장이 후계 수업을 받던 지난 1974년 한국반도체 인수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이 회장은 당시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반도체 인수에 "제 사재를 보태겠다"며 적극 나섰고, 1986년 7월 1메가 D램을 생산하는 결실을 맺어 아버지를 흡족케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병철 회장이 1982년 미국 IBM, GE, 휴렛-팩커드의 반도체 조립라인을 돌아본 뒤 "너무 늦었다"며 낙담할 때에도 이건희 회장은 부친을 설득해 삼성이 현재 세계 1위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에 고인의 영결식 후 마지막 출근지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반도체 사업장이 됐다. 이곳이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신화를 달성하게 한 초석이 된 장소이자, 이재용 부회장이 제시한 '반도체 비전 2030'의 일환인 시스템 반도체 공략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회장은 지난 2010년 화성캠퍼스에서 진행된 16라인 기공식에, 2011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출하식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이곳에 애정을 쏟았다. 이곳은 삼성전자의 최신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과 반도체연구소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화성캠퍼스 정문에는 '회장님의 발자취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하얀색 현수막이 내걸려 눈길을 끌었다. 사내 공지를 전해들은 삼성전자 임직원 수백여 명도 국화를 손에 든 채 고인을 태운 운구차를 맞이했다. 몇몇 직원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대부분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 회장은 화성캠퍼스에서 빠져나와 경기도 수원에 있는 가족 선영에 마련된 장지로 이동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이 회장이 써 내려간 삼성의 성공 스토리는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넘겨 받게 됐다.
일단 이 부회장은 화학·방산 등 비(非)주력 사업을 매각하고, 시스템 반도체·5G(5세대) 이동통신 장비·바이오 등 신성장 동력 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뉴 삼성'의 밑그림을 그려 가고 있다. 또 AI 반도체와 5G 등 신성장 사업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날 추도사를 한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은 "'승어부'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말로, 이것이야말로 효도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라며 "나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건희 회장보다 '승어부'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부친의 어깨 너머로 배운 이건희 회장이 부친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루었듯이 이건희 회장의 어깨 너머로 배운 이재용 부회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며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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