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직장인 손영은(33) 씨는 할인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면 절대 지갑을 열지 않는다. 백화점에서는 정기 세일이나 브랜드 세일 기간을 이용해 주로 옷을 사고, 고가 화장품은 면세점 할인 시즌에 맞춰 직접 구입하거나 지인에게 부탁해 구입한다. 손 씨는 "저렴한 로드숍 화장품은 매달 진행하는 세일 기간에 맞춰 산다"며 "백화점이나 매장에서 세일을 하지 않으면 온라인 쇼핑몰에서 세일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주요 백화점들이 15일부터 겨울 정기 세일에 들어갔다. 각 백화점들은 의류, 잡화, 리빙 상품 등을 최대 80% 할인 판매한다고 알리며 고객 잡기에 나섰지만, 정작 고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백화점을 비롯해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몰까지 너무 잦은 할인을 한 탓에 무덤덤해 진 탓이다. 실제로 이날 찾은 서울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은 평소보다 손님이 더 줄어든 모습이었다.
백화점 정기 세일 기간은 2010년 78일, 2011년 85일에서 2012년부터 101일로 훌쩍 뛰었다. 당시 너무 잦은 세일 탓에 '세일 공화국'이라는 비판이 이어지자 2015년부터 95일, 93일(2017년)로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올해도 백화점들은 89일 동안 세일 행사를 진행했다. 여기에 브랜드 세일, 대관행사, 창립기념 행사, 해외명품 대전 등 각종 행사를 세일 일수에 포함시키면 거의 매일 세일 행사가 진행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내수 진작을 위해 코리아 세일 페스타 등 국가 차원의 대규모 이벤트와 국내 기업 주도로 진행되는 11월 초 대형 할인 행사까지 잇따르면서 세일이 너무 잦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 쇼핑몰들은 매일 특가 상품을 쏟아내는 데다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미끼 상품'까지 판매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세일에 점차 둔감해지고 있다. 1년 내내 싸게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오히려 "제 값에 사면 바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백화점을 찾은 한 소비자는 "할인 행사를 한다고 하지만 인터넷에서 사는 게 저렴할 때가 더 많아 매장에서는 상품만 구경하고 갈 때가 많다"며 "행사장에서 80~90% 세일한다고 하는 상품들은 너무 오래된 재고품들이어서 구입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세일이 보편화된 후 행사 기간이 길어지고 각종 부작용이 사회문제화되면서 한 때 세일을 규제하기도 했다"며 "지금은 유통 환경이 달라지면서 정부가 이를 감안해 세일 기간을 제한하지 않지만 잦은 세일로 소비자들의 가격 불신은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365일 세일 중'이라는 오명이 붙을 만큼 세일 행사가 잦은 이유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어서다. 살림이 팍팍해지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게 되자, 유통 채널들이 할인 행사가 아니면 고객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불안감도 한 몫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99.5로 기준선인 100 아래로 다시 떨어졌다. 이는 9월보다 0.7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가 안좋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더 많다는 뜻이다.
신용카드 사용 금액도 감소세다. 3분기 건수 당 평균 승인금액은 전체 카드가 3만9천448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 감소했다. 신용카드의 평균 승인금액은 5만823원으로 전년 대비 2.9%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안좋다고 계속 기다릴 수만은 없어 가격을 내리는 대신 수요를 확대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며 "경기가 좋으면 기업들이 굳이 가격을 낮출 이유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기 불황으로 지갑을 닫는 이들은 고소득층이 아닌 중산층"이라며 "중산층이 자주 찾는 소매업체들이 타격을 입다보니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격 할인 경쟁을 과하게 펼치면서 결국 소비자들이 세일을 식상하게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세일 당시에는 매출이 증가해도 이후 매출이 줄어 '제로섬'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세일에 참여하는 제조사에 미치는 부작용이 없는 것인지 등 여러 파급 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며 "백화점뿐만 아니라 모든 유통업체들이 단순한 할인 행사만 계속 벌이는 것 외에 다른 마케팅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유미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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