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송대성 기자] 신동빈 롯데 회장이 지난 9일 열린 연두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회의)에서 고강도 쇄신을 주문한 것과 맞물려 롯데면세점이 핵심정책을 전환하며 주목을 모은다.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인 보따리상(일명 '다이궁')과 거래를 전면 중단하는 초고강도 경영전략을 단행한 것이다.
업계 1위 매출기업이 실적 반토막을 감수할 정도의 획기적 결정을 내리면서 적자에 허덕이는 면세 업계에 반등의 바람이 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면세점은 중국을 비롯한 주요 상업성 대량 구매 거래처에 이달부터 면세품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인 보따리상은 국내 면세점에서 면세품을 대량 구매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유통하는 업자들이다.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둘러싼 갈등으로 중국 정부가 자국 단체관광객의 한국 입국을 금지한 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롯데면세점은 매출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중국 보따리상과의 거래 중단을 통해 당장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수익 개선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롯데를 비롯한 국내 면세점들은 코로나19로 해외 관광객이 끊기자 중국 보따리상을 통한 매출 의존도를 높이며 이들에게 상품 가격의 40~50%를 송객수수료 명목으로 지급해왔다. 이후 수수료율은 30%대 중반까지 줄었지만 수익의 마지노선인 20%보다 높은 수준이어서 팔수록 손실이 나는 구조가 됐다.
김동하 롯데면세점 대표은 이에 신년사를 통해 "과거 면세점이 볼륨 중심의 성장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수익성 중심의 경영 활동을 추진할 시점"이라며 "거시적 관점에서 사업성을 재검토하고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해 중장기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라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신동빈 롯데 회장은 지난주 열린 VCM에서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로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지금 쇄신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지금껏 해오던 방식에 안주할 경우 도태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롯데면세점은 중국 보따리상의 빈자리를 내국인 관광객과 외국인 개별 관광객, VIP 고객 등으로 채운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폐지했던 마케팅 부문을 복원했다. 또한 상품 운영 효율화를 위해 운영혁신부분을 신설했다.
현대면세점도 지난해부터 중국 보따리상과의 거래를 줄여가고 있다. 다만 아직 거래 중단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시장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 업계에서는 중국 보따리상과의 거래 중단을 기대와 우려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은 규모의 경제도 있으니 매출이 줄어들면 바잉 파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많이 팔리는 면세점에 좋은 조건을 제시할 것"이라면서 "업계 1위의 결정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업체들도 따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보따리상으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 저하가 개선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국 보따리상이 주로 구매하는 게 화장품이다. 그런데 중국 현지에서 가품이 많이 섞여 유통되면서 브랜드 이미지 관리의 문제가 되고 있다"라며 "고급화 전략을 구축하고 싶어도 보따리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면세 업계가 살아나기 위해선 관련 정책도 예측 가능한 경영환경 구축에 중점을 두고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송대성 기자(snowbal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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