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유범열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태를 맞은 국민의힘이 고정 지지층 결집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의원 상당수가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집결하는 한편, 일부 의원은 극우 성향 지지자들 목소리에 편승했다. 그런가 하면 한 의원은 '백골단 기자회견'을 국회에서 열어줘 논란을 자초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의 현재 상황에 대해 "중도층을 잃는 전략이 장기적으로 당 전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 의원 '극우 편승'…지도부도 '줄타기'
최근 국민의힘에선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도를 넘어선 언행들이 이어지고 있다. 김민전 의원은 지난 9일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체포 반대 집회를 벌인 '반공청년단'의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해 논란이 됐다. 반공청년단은 1차 체포영장 집행 전후로 윤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하얀 헬멧을 쓰고 '백골단'을 자처하며 시위를 벌였다. 백골단은 이승만 정부 시절 정치깡패 집단으로, 1980년대 군사 정권 당시에는 시위대를 무력 진압한 경찰 부대를 지칭했다.
문제가 되자 김 의원은 바로 기자회견을 철회한다고 했지만, 파장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의원에 대한 국회의원 제명촉구결의안을 제출했다. 시위를 주최한 반공청년단은 예하 조직인 '백골단'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1차 체포영장 집행 전후로 한남동 윤 대통령 관저 앞을 찾은 의원들도 논란이 됐다. 관저에서 윤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한 윤상현 의원은 지난 11일 극우 인사 대표 격으로 꼽히는 전광훈 목사의 집회에 또 한 번 참석했다.
윤 의원은 앞선 주말 본인에게 '대통령감'이라고 한 전광훈 목사에게 '90도 폴더 인사'를 해 비판을 받았는데, 그는 이날도 집회에서 "대통령을 지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데 백 번, 천 번 징계해도 제명 당해도 좋다"는 수위 높은 발언을 이어갔다.
1차 체포영장 집행 기한인 지난 6일 관저를 찾아 공수처 영장 집행의 부당성을 집중 주장한 45명의 여당 의원들 중 상당수도 이번주 중 2차 체포영장 집행이 개시되면 다시 관저를 찾을 것으로 전해졌다.
지도부는 이 같은 의원들의 움직임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명확히 선을 긋지도 않는 모양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김 의원에 대해 "본인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했기 때문에, 징계 사유에 해당하진 않는다고 본다"고 했다.
원내지도부 관계자도 13일 징계 계획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재차 밝혔다. 또 의원들의 관저 집결 계획에 대해서도 '의원들이 적절히 알아서 판단할 것'이라며 당 차원의 조치 여부에 대해 말을 아꼈다.
국민 64% 탄핵 찬성…與, '지지율 신기루'에 고무
하지만 계엄·탄핵 정국에서 나타나는 국민의힘의 이같은 대응 방식은 여전히 민심 주류와 동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7~9일 진행한 여론조사(전국 18세 이상 1004명 대상으로 무선전화 전화조사원 방식·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응답률은 16.3%, 자세한 사항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지난달 3일 비상계엄 이후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된 윤 대통령 탄핵소추와 관련해 응답자의 64%가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대한다'는 응답자는 32%였다. 앞선 여론조사(12월 10~12일 실시)보다 탄핵 찬성 여론이 소폭 줄어든 수치지만, 여전히 국민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윤 대통령이 탄핵될 만한 잘못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내부에서 강경론이 득세하는 이유는 '탄핵 트라우마'와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보수 정당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분열했다. 현재 '당 결집' 선봉에 서있는 권 원내대표도 당시 탄핵 찬성파가 모인 바른정당에 합류해, 국회 탄핵소추단장(법사위원장)으로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을 이끌어낸 바 있다.
현재 국민의힘은 당시 분열이 2017년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민주당에 정권을 내줬다고 보는 분위기다. 한 여당 관계자는 "현재 의원들 사이 '박근혜 탄핵'이 정당했다고 보는 이들이 많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고정 지지층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에) 등을 돌렸고, 유승민 의원까지 대선에 출마하면서 문 전 대통령의 압승을 지켜보기만 할 수밖에 없던 기억이 선명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이는 점도 자신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 의뢰로 지난 9~1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40.8%로, 더불어민주당(42.2%)과 오차범위 내 팽팽한 양상을 보였다(전국 18세 이상 1006명 대상으로 무선전화 전화조사원 방식 실시·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응답률 5.7%, 자세한 사항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는 계엄 직후 두 배 이 벌어졌던 지지율 격차(국민의힘 25.7%·민주당 52.4%, 12월 둘째주)를 회복한 결과다. 탄핵 사유에서 '형법상 내란죄'를 철회하고,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위법성 논란 등 민주당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보수층이 결집했다는 진단이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일부 거리만 유지한다면 조기 대선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장기적 위기 직면…대선 포기하고 당권 보나"
그러나, 결국 이는 장기적으로 당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소신파로 꼽히는 한 여당 초선 의원은 12일 <아이뉴스24>와의 통화에서 "이유가 어찌 됐든 계엄 사태는 당 입장에선 무조건 털고 갈 문제"라며 "대다수 국민들이 관저를 찾는 의원들을 보면 '계엄을 옹호하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당이 너무 근시안적으로 상황을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날 통화에서 "벼랑 끝에 선 국민의힘이 '정권은 무너지더라도 보수는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심리가 작동되고 있는 것 같다"며 "자신들의 안위가 가장 중요한 의원들이 총선도 3년 이상 남아있다 보니 더 똘똘 뭉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 국민의힘은 마땅한 주자도 없어 대선은 사실상 포기한 것 같다"며 "중진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보수 지지층에만 소구하는 행보는 향후 상황이 정리된 후 당권 등을 차지하려는 또 하나의 권력 다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조기 대선을 포기하면 차기 대선 이후엔 극심한 '여대야소' 상황인데, 당 입장에선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위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도 "당이 여론조사를 보고 움직인다면, 지금 나오는 결과를 100% 신뢰하기는 어렵다"며 "여론조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윤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지지층이 과표집돼 당 지지율에 거품이 낀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민전 의원의 '백골단' 논란, 윤상현 의원의 자유통일당 집회 논란도 국민의힘이 지지율 상승 국면에서 '업(up)' 되다 보니 나온 것 아니겠나"라며 "지도부 차원에서 이런 것들은 확실히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범열 기자(hea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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