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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시위의 품격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간절히 떠오르는 단어가 품격(品格)이다. 사람이나 사물의 성질을 품(品)이라고 부른다. 그 뒤에 단어를 붙여 사람이나 물건에서 느껴지는 품위를 품격이라고 한다. 품격은 사회 지도층뿐 아니라 일반인 모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그런데 집회·시위를 바라보면 격(格)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헌법 제2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헌법 제37조 2항에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헌법 규정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 시위의 품격이 그닥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변 사람들의 피해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볼모를 잡는 행태로 변질되고 있어서다.

세종대로나 국회대로, 대기업 사옥 앞은 무분별한 시위와 천막 농성장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혐오스러운 표현의 현수막과 띠줄, 피켓, 배너, 천막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16일부터 이틀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1박 2일로 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건설노조의 노숙 집회도 그렇다. 민노총은 수만명을 동원해 서울 도심을 마비시켰다. 심지어 도로를 무단 점거한 채 술판을 벌이고 노상방료까지 자행했다. 그 바람에 시민 불편은 극에 달했다. 이 무법천지를 보는 이들의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직장 내 어린이집이 입주한 대기업 사옥 앞은 더 심각한 지경이다. 삼성이나 현대차 등 주요기업 사옥 앞에서 법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1인 시위'는 소음의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현행법상 집회는 2인 이상 모여야 한다는 법규정을 악용하고 있어서다. 집시법상 확성기 등 소음기준은 80dbA(데시벨), 주거지역은 65dbA이지만 1인 시위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어린이집은 집시법 규제에서도 빠진다. 현행 집시법에서는 초중등학교 주변 집회와 시위를 제한하고 금지할 수 있게만 했다. 어린이집은 초중등교육법상 교육기관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기업 사옥들에 입주해 있는 어린이집은 집회·시위 소음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다양한 이익집단이 출현하는 등의 시대적 변화는 집회시위의 목적과 성격을 공공의 가치보다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모시켰다. 한발 더 나가 시민을 볼모로 한 시위까지 성행하고 있다.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민폐 시위가 양산되고 있는 셈이다.

인종주의 참사의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020년 5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의 무릎 밑에 깔린 플로이드는 코피를 흘린 채로 숨을 쉴 수 없다고 고통을 호소했으나 경찰은 이를 무시했다.

사고 영상이 공개되면서 시민들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미국 전역을 휩쓸었다.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서 대규모 항의 및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열렸다.

하지만 시위는 매우 평화적으로 전개됐다. 과거 방화나 약탈 등 폭력과 폭동으로 얼룩졌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국 런던의 의회 광장에는 수천 명이 모여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1분 묵념'을 했고 쥐스탱 트뤼도(Justin Pierre James Trudeau) 캐나다 총리도 '무릎 꿇기'에 동참했다.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우리 집회·시위문화도 이렇게 평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스스로 바꾸기 어렵다면 법으로 틀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정치권에서도 헌법에서 보호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과도한 집회·시위 방식을 제한하고 혐오 표현 등을 규제하는 다수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집시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그 고통은 오롯이 시민의 몫이다. 바람직한 집회·시위문화 정착과 시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라도 집시법 개정안 처리가 시급하다. 우리의 집회·시위문화도 품격을 갖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양창균 기자(yangc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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