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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민주당에 인수된 김동연, 준비 안 된 정치스타트업의 끝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가 제20대 대통령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2월 15일 서울 성동구 청계천 옛 판자촌터에서 첫 공식 거리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가 제20대 대통령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2월 15일 서울 성동구 청계천 옛 판자촌터에서 첫 공식 거리 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아이뉴스24 정호영 기자] 작년 11월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가 대선에 출마한 지 2개월, 창준위를 구성한 지 며칠 지난 시점이었다.

대선후보로서의 지지율은 미미했지만 출마 때부터 정치스타트업 창업주를 자처하며 '기존 정치권에 숟가락 얹지 않겠다', '기득권 양당구조를 타파하겠다'는 등의 구호를 자신 있게 외쳤던 김 대표였기에 대선 완주 여부를 넘어 이른바 '제3지대' 정치를 계속 해나갈지 궁금했다.

그 자리에서 김 대표에게 '제3지대 후보가 성공한 전례가 없는데 어떻게 선거운동 할 것인지', '대선 이후에도 당을 계속 이끌어나갈 것인지', '기성정당과 거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향후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제3지대 성공은 전례없는 일이라 모두 회의적으로 생각하겠지만 이뤄진다면 확률 100%다. 안 된다 해도 누군가는 두들겨야 열린다. '퍼스트 펭귄'이라는 말도 있다. 하나가 뛰어내리면 다 따라 뛰어내리기도 한다. 말보다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주겠다." 원론적 수준에 그친 말이었지만 김 대표는 그간 양당의 숱한 러브콜을 고사하고 독자 창당이라는 혹독한 길을 택한 터라 나름대로 진정성이 느껴졌다. 입장 변화에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거대양당 구조를 부수겠다며 단기필마로 정치판에 뛰어든 김 대표에게 기대를 건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대선 예비후보에 등록하고 후원금 모금 하루 만에 12억원을 모았다. 이 같은 후원 액수는 그가 대선에 임하며 자신감을 갖게 된 가장 큰 배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저조했던 지지율은 끝까지 꿈쩍이지 않았다. 당초 양대진영 총결집이 예고된 대선에서 선거운동 자체가 느슨했다. 양당은 하루가 멀게 공약을 내고 전국 순회 유세를 하는데 김 대표는 대선 두 달 앞둔 1월에서야 창당을 끝냈다. 하루하루 대선이 가까워지며 실무진들은 당의 존립 여부를 놓고 노심초사하는데 김 대표의 변함 없는 느긋한 태도와 우유부단함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김 대표가 대선판에서 소외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대선 막바지인 2월 26일 그를 인터뷰했다. '대선 이후에도 새로운물결을 이끌고 정치교체에 도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김 대표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로부터 3일 뒤인 3월 1일 김 대표는 이재명 전 민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완주를 포기했고, 같은 달 29일에는 민주당과 합당을 공식화 했다. 그가 기득권 정당으로 규정했던 민주당과 손을 잡고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정치교체를 하겠다는 것이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가 지난 2021년 12월 24일 국회 앞에서 부인 정우영씨와 함께 붕어빵을 만들고 있다. [사진=정호영 기자]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가 지난 2021년 12월 24일 국회 앞에서 부인 정우영씨와 함께 붕어빵을 만들고 있다. [사진=정호영 기자]

표면적으로 합당이라는 보기 좋은 모양새를 취했지만 김 대표의 출마 초 발언을 고려하면 백기 투항이나 다름없다. 한번 결심하니 발언에도 거침이 없다. 우선 소신으로 밝힌 다당제. 과반 의석 초거대 기득권 정당에 편입되면서도 김 대표는 관련 기자회견에서 "(합당은) 다당제를 포함해 정치개혁, 권력구조 개편 등 정치교체 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당제 하겠다며 합당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나는 '위에서의 반란'을 통해 다당제 터를 닦을 테니 다당제 할 분들은 알아서 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이끌겠다'는 불과 7개월 전 출마선언문이 무색하다.

또 172석 민주당이 정권을 국민의힘에 넘겨주기 전까지 하지 않은, 그마저도 대선 10일 앞두고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갑작스럽게 하겠다고 나선 정치개혁을 김 대표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뤄낼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김 대표는 6·1 지방선거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당연히 민주당 소속으로다. 경선을 넘어 본선에서 당선된다 한들 정치교체에 어떤 대단한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이와 별개로 당장 김 대표를 포함한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군 사이에서 경선룰 문제로 잡음이 나오는 것을 보면 김 대표가 앞서 '기득권 양당' 운운했던 것이 까마득한 옛날 같기도 하다.

지난 대선에서 가시밭길을 걸었던 만큼 김 대표는 지금 거대양당 구조의 단맛을 조금은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당도는 그가 선두권에 위치한 각종 차기 경기지사 지지도 여론조사 데이터로 나타나고 있다. 향후 김 대표가 조직, 재정 걱정 없는 거대정당에서 안주할지, 그저 당의 필요에 따라 활용되는 데 그칠지, 야당 내 야당으로서 과감한 개혁을 주도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온전히 그의 몫이다.

어찌됐든 양당은 약속한 대로 오늘(7일) 합당선포식을 갖는다. 김 대표가 야심차게 내놓았던 정치스타트업은 제대로 된 파도 한번 일으키지 못하고 창업 3개월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작년 12월 24일, 김 대표가 국회 앞에서 붕어빵을 만들어 팔던 날 현장에 있었다. 그를 보기 위해 시민 수십명이 한파를 뚫고 줄을 섰다. 대선 당선이 불가능해진 시점이었음에도 일부 지지자들은 1개 500원짜리 붕어빵 몇 개를 주문하며 1만원 내지 5만원권을 내밀고는 김 대표를 격려했다. 이번 대선은 힘들지언정 정치교체를 이루겠다는 그의 약속을 지지한다는 차원 아니었을까. 다른 선택지가 없어 민주당에 인수(引受)되는 길을 택했겠지만, 정치개혁 과제에 짓눌린 김 대표의 어깨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정호영 기자(sunris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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