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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진의 사이트리뷰] 실험정신은 계속되어야 한다. 쭈욱~ ; 딴지일보


 

학교시절 딴지일보(www.ddanzi.com/ddanziilbo/home.html)를 읽으며 무작정 인터넷사이트를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나도 나중에 저런 사이트를 한번 해보리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시절 어리석기만 했던 상념이 전혀 어림없는 푸념은 아닌 듯 싶다. 그래도 지금은 그 나마 엇비슷한 언저리에서 일을 보고 있으니까.

오늘은 지난 시절 필자를 그토록 매료시켰던 딴지일보를 한 번 리뷰해 볼까 한다. 격세지감이긴 하지만 딴지일보 만의 신선한 충격과 실험정신이 아직도 건재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하지만 딴지일보를 낱낱이 해부하기에 앞서 꼭 일러두고 싶은 말이 있다. 어느 누구도 일반 사이트를 보는 잣대를 가지고 딴지일보 만의 실험정신을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패러디와 안티, 그리고 엽기의 미학을 정확히 측정해낼 수 있는 잣대는 없기 때문이다.

◆ 패러디와 안티, 그리고

딴지일보의 사이트를 크게 4개의 기본 구성 카테고리(정치×경제, 사회×문화, 국제×과학, 스포츠×오락)와 부가적으로 첨가되는 1~2개의 카테고리들(사고, 이벤트)로 나뉜다. 여기에 딴지영진공(영화), 딴지관광청(여행), 딴따라딴지(음악), 딴지박물관, 딴지점빵(쇼핑) 등이 이 사이트의 큰 틀을 유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딴지일보가 패러디사이트이자 안티사이트다’는 평도 바로 4개의 기본 구성 카테고리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신문의 요소를 패러디 하되 그 내용은 안티! 바로 이것이 딴지일보의 출발점 이었던 것이다.

다음의 URL(myhome.netsgo.com/ddanji/1/ddanji_main_1.htm)을 클릭해 보면 보다 쉽게 딴지일보 카테고리의 근본의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 4개의 기본 카테고리 내에서 정해진 소재와 주제는 없다. 다만 명확한 풍자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명쾌한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이번 57호에 연재된 국제×과학 카테고리의 ‘구케으원 e-마인드 디비기’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딴지일보만의 논조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는 콘텐츠라 하겠다.

그러나 최근 딴지일보의 논조가 자꾸 흔들리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그들이 자랑하는 게시판에서도 가끔 이러한 얘기가 흘러 나온다. 날카롭기 그지 없던 딴지만의 언어가 이제는 배설과 그에 따르는 카타르시스만을 위한 소도구로 전락해 버린 탓일까?

◆ 사이트 안팎의 변화들

과거의 딴지일보와 현재의 딴지일보를 비교해보면 크게 두 가지점에서 그 변화를 관찰해 볼수가 있다. 첫째는 사이트 밖에서의 변화인데, 과거 패러디와 안티의 대상이었던 조선일보가 더 이상은 그것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제 어떤 형태의 안티이든 간에 네티즌은 더 이상 그들이 날리는 처절한 똥침에 열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이트 내에서의 변화인데,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의 인터넷과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의 인터넷 간의 교차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그리 만만한 작업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시도는 최근에 오픈한 ‘딴지점빵’, ‘딴지 아카데미’ 등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으며, 지난8월 중순 시작한 인터넷방송 ‘웹토이’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밖에도 CRM이 필요가 없었던 그들만의 게시판(독투불패) 문화가 바뀌었다. 그리고 나더니 재작년까지만 해도 하룻밤 새 1천 여 건에 달하던 게시물이 눈에 띄게 줄어 들어 버렸다. 한때는 딴지일보 게시판만 들어가도 인터넷의 흐름이 보였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견지에서라면 딴지일보는 지금 크나큰 난관에 봉착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 이것은 패러디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딴지일보를 단지 패러디 신문 정도로만 보아주는 시각의 문제 일 수도 있다.

◆ 아직도 실험정신은 살아있다

벤처도 2년이면 대충 내부 물갈이를 마친다고 했던가? 필자가 볼 때 지금의 딴지일보는 패러디의 한계를 벗어나 비즈니스와 사회문화를 적절히 배합해 가고있는 과정인 것 같다. 비록 초기화면에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 저널’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저널이 기성의 저널이 아니었듯이 그들의 예봉은 아직 꺾이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우려처럼 그들의 예봉이 꺾었다면 네티즌들에게 ‘봄날은 간다’와 ‘조폭마누라’의 차이를 구별해 주었을 리 없고, ‘아트 쉬피겔만의 쥐’를 추천도서로 추천해 주었을 리 없다.

◆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비즈니스적인 관점과 사회문화적인 관점의 접목이 그리 녹록한 작업만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딴지일보가 선보인 향수 비즈니스(ex. 딴지박물관, 고우영의 삼국지, 로보트 태권V)의 경우는 사회문화적으로는 ‘향수’라는 컨셉과 비즈니스적인 안목을 결합시킨 딴지일보만의 실험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을 향유하는 계층이 한정된다는 점에서는 역시 딴지일보도 수익을 위해 ‘그들만의 미디어’를 선택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딴지일보의 정체성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인터넷 업계에 있으면서 딴지일보를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향력도 영향력이지만 어떤 사이트이건 그들만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가입자나 방문자 수의 얘기가 아니다. 딴지일보만의 고유한 네티즌들과의 관계 문제이다.

이에 대한 딴지일보의 이제까지 입장은 명확했던 것 같다. ‘너희 네티즌들이 그리도 원하더란 말이냐? 그럼 내 함 보여주지!’ 하지만 이제 누군가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된것 같다. 딴지의 실험정신이 예서 멈춰서는 안 된다고. 비단 딴지일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인터넷을 통해 선뵐 제2, 제3의 대안미디어를 위해서라도.

/김교진 웹 애널리스트 kgj100@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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