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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작가의 러브레터]무엇에 쫓기는가, 무엇을 쫓는가?


2006년 말이었다. 내 나이가 50대라는 낯선 연대기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라던 그 때가. 그 해를 전후해서 같은 연배의 방송작가 네 명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안면이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의 죽음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방송작가는 여러 가지 직업군 중에서 평균수명이 가장 짧은 축에 든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접하고 보니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데드라인(마감)에 쫓기는 생활이라는 것은 그만큼 명을 단축시키는 일이다. 그때 내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종신보험에 가입한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한 장 쓴 것뿐이었다. 종신보험은 대학생인 딸을 위한 것이었고, 과분한 사랑을 받고 살아온 나의 처지를 늘 고맙게 생각해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때부터 데드라인에 쫓기는 생활을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그렇게 빨리 죽고 싶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났다. 새해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연말연시라는 것을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다. 여전히 마감에 쫓기고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 두 개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12월 31일이건 1월 1일이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원고 쓰기 위한 준비를 하는 날과 원고 쓰는 날만이 중요하다.

밤샘을 해서 원고를 넘기고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비가 온다. 맑아지지 않는 머리를 식히며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무엇에 쫓기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쫓는가? 분명히 무엇엔가 쫓기는 것 같고 무엇을 쫓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무엇이 무엇인지 좀체 알 수가 없다.

작은 통 속에 들어앉아 쳇바퀴를 돌리는 햄스터처럼, 고삐에 매어 끊임없이 연자매를 돌리는 눈 먼 소처럼, 그렇게 이 사이클 속에서 쫓기는 것의 실체도, 쫓는 것의 실체도 모른 채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미디어법 개정을 저지한다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도 여전히 방송일정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고 앉아 있는 것이 옳은 일인지...... 내가 마감에 쫓길 때마다 편한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을 멀리에 두고 나는 왜 아직도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감기를 앓던 어린 날 열에 들뜬 짧은 낮잠 뒤에 일어나 여기가 어디냐고 세상에 낯가림을 하던 그때처럼 새삼 모든 것이 이상하기만 하다.

/문영심(피플475(http://wwww.people4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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