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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섭의 바이오 투자]바이오에도 '복고 바람'이 분다


맞춤의학의 시대가 열린다

불경기의 문화 코드는 복고라고 한다.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드리운 올 가을 우리나라의 패션계, 문화계에도 복고 바람이 불고 있다. 10대 소녀들로 구성된 원더걸스의 노래 '노바디'는 복고 코드를 전면에 내새워 30, 40대 아저씨들을 아이돌(idol)의 팬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대표적인 미래산업이자 차세대신성장동력산업으로 불리는 바이오산업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게놈프로젝트(Genomics)의 부활

2008년 미국 샌디에고에서 열린 국제바이오컨퍼런스의 화두는 '맞춤의학'(Personalized Medicine)이었다. 언스트영(Ernst&Young), 버릴앤드컴퍼니(Burrill&Company) 등 바이오산업에 대한 연례보고서를 발표하는 두 기관은 맞춤의학의 시대가 도래될 것임을 지적하며 인간게놈프로젝트(Genomics)의 부활을 나란히 공표하였다. 새천년의 벽두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인간유전자지도'가 8년 만에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2000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영국의 토니블레어 총리가 공동으로 인간유전자지도 초안의 완성과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성공을 선언하면서 세상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대역사(大役事)이다. 3조원을 들여 인간의 세포 속에 있는 약 3만개의 유전자와 그 속에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30억 쌍의 염기서열을 읽음으로써 인체 설계도의 일종인 인간유전자지도를 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0년 '바이오버블'(거품)의 중심에 있었던 게놈프로젝트는 초안이 밝혀진 이후 3년 뒤에 22번 염색체 지도가 완성되는 등 인간유전자 지도의 빈칸을 빠르게 메워갔지만, 2002년 이후 버블이 꺼지면서 더 이상 인구에 회자되지 않는 '잊혀진 계절'이 되어갔다.

2008년의 지노믹스(Genomics)는 맞춤의학의 시대에 한층 더 가까이 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맞춤의학이란, 획일적인 투약이나 처방에서 벗어나 개인의 유전적 특징 등에 따라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료를 말한다. 이러한 맞춤의학을 가능케 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 '어떤 약물이 나에게 적합한가' 등에 대한 유전자 정보의 확보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유전자 정보를 제공하는 도구가 게놈프로젝트(Genomics)이다.

현재까지의 의료가 질병이 발생한 이후, 비슷한 또는 동일한 진단이 된 환자들에게 'one drug fits all'이라는 경험칙에 근거한 동일한 치료를 하고, 그 경과 및 반응에 따라 시행착오적으로 치료방법을 수정하는 것이라면, 맞춤의학은 질병의 경과를 미리 예측 또는 예방할 수도 있고, 질병이 발병한 이후에는 개개인별로 질환의 특성 및 차이를 고려한 약물치료나 유전자교정이 가능하며 아울러 치료에 따른 효율 및 합병증 등을 예견할 수 있게 되므로 환자의 치료 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학적 비용 측면에서도 그 효과는 상당하다.

바이오산업의 흐름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시작을 돌이켜 본다면, 2000년 초 인간유전자지도 초안의 작성을 선언했던 그 시기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 우리나라에는 ㈜마크로젠이라는 벤처기업이 있었다. 한국인게놈프로젝트를 수행한 이 회사는 바이오벤처 최초의 코스닥 상장 기업으로서, 26일 연속 상한가라는 증권시장 신기록을 수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구조조정의 터널을 지나 2008년 현재 이 회사는 게놈프로젝트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하는 유전자정보분석서비스로 전세계 1만여 고객들을 대상으로 2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며 '기술주'에서 '실적주'로 부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차세대유전자정보분석기 개발을 통하여 맞춤의학시대의 도래를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시작은 그 20년 전에 시작되었다.

1980년 미국의 1세대 바이오벤처기업인 제넨테크가 나스닥에 상장되어 개장 직후 주가가 2배 이상 뛰어오르며 바이오붐의 서막을 알릴 때,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의 선각자들에 의하여 유전공학연구조합이라는 모임이 결성되어 유전자의 '유'자도 모르던 이 땅에 바이오산업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 뒤 LG생명과학의 연구진이 개발한 항생제 '팩티브'가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시판허가를 받아 우리나라는 세계 11번째의 신약개발국가가 되었다.

바이오는 애초부터 산업적인 의미를 갖지는 못하였다.

100년 전까지 박물학(博物學)으로 불리며, 널려 있는 생명현상을 수집하고 분류하는데 머물렀던 생물학이 본격적인 제도권 과학으로 편입되는 데에는 '유전물질'의 정체가 DNA(deoxyribonucleic acid)라는 고분자물질임을 밝혔던 연구가 분기점이 되었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은 유전물질이 이중나선 구조를 갖는 DNA라는 짧은 논문을 네이처(nature)지에 투고하였다. 생명현상의 핵심물질에 대한 구조가 밝혀짐으로써 연구의 대상이 명확해졌고 이후부터 생명현상을 DNA를 구성하는 분자 수준에서 접근하는 연구가 활성화되었다.

제넨테크라는 회사 역시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라는, 유전자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일종의 가위를 발견하고 그 쓰임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기술기반적인 기업이었다.

그러나, 게놈프로젝트는 이러한 환원주의적 접근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일대 사건이었다. 구체적인 현상에서 출발하여 그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낚시를 하듯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유전자를 한번에 파헤쳐 놓고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연역적인 시도였던 것이다.

유전정보의 대량생산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놈프로젝트는 산업화의 결정적 단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모자람이 없는 듯 하다.

맞춤의학의 시대가 오고 있다

바이오의 복고는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기간이 짧다. 그 만큼 속도가 빠른 산업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단순한 과거에의 향수에 머무르지 않는다.

클린턴과 블레어의 선언이 감추어야 했던 연구성과의 빈칸들을 빠르게 메우고 있다. 이미 대중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 도구가 등장하였다.

2000년 한 사람의 유전체(전체 유전자)를 분석하는데 3조원이 들었던 데 반하여, 8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약 3억원이 소요된다. 무려 만분의 일로 줄어든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일천불로 내 모든 유전자를 볼 수 있는 분석기기가 개발되고 있어 3~4년 후에는 시장에 등장할 예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의 유전자지도를 갖게 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더 이상 유전자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돈을 내고 볼 수 있는 나의 관심거리가 되는 것이다.

유전자와 질병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성과가 축적됨에 따라, 내가 무슨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 무슨 약을 먹어야 더 효과가 있을지를 알 수 있게 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TV 너머 아폴로11호를 보며 토끼가 떡방아 찧던 달이 분화구들로 덮여진 황무지임을 알았던 것처럼 내 몸 속의 작은 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시 돌아온 지노믹스(Genomics)는 난수표와 같은 유전정보를 그저 둘러보는 것 이외에 새로운 쓰임을 제시하고 있다. 해석하고 연결하는 연구성과들이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정보학(Bioinformatics)을 통하여 난수표에서 유전자를 찾아내고 그 기능을 규명할뿐더러 실생활에 활용코자 하는 시도들이 하나 둘씩 가시화되고 있다.

가장 빠르게 만날 수 있는 성과는 질병의 '진단'이 될 것이다. 연구자들이 분자진단이라 부르고 있는, 질병의 현상을 보고 질병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에 따라 질병 여부를 판단하는 진단을 말한다. 이로써 조기 진단이 가능할 뿐더러 치료 이후의 예후를 분별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암수술 이후 암이 재발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도 새로운 접근이 기대되고 있다. 보다 적은 임상시험으로도 보다 성공적인 신약의 개발이 가능해진다. 약물유전체학(pharmacogenomics)을 통하여 이 약이 내게 맞는지를 유전자 수준에서 알 수 있게 되며, 영양유전체학(nutritional genomics)을 통하여 임신을 한 내 아내에게 하루에 엽산(비타민B9) 몇 알을 주는게 좋은지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것은 임상시험의 과정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약물들을 구체적인 쓰임에 따라 다시 살려내는 일명 재활용신약(drug repositioning)의 등장이다.

임상과정에 진입한 약물 중 시판이 허용되는 것은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개발단계까지를 감안한다면 1만개 중의 하나만이 약물로서 쓰이게 된다.

지노믹스는 이 과정에서 사라진 99% 이상의 약물들을 다시 살펴보고 재활용 여부를 가늠케 한다. 기존의 약물이 대부분 부작용 때문에 개발에 실패하였고, 이는 모든 사람에 문제가 없어야 하는 기준에 기인함에 반하여, 지노믹스라는 도구를 통하여 우리는 '사람'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게 되고 각각의 그룹에 맞는 약물을 골라내어 결국 약국의 선반 위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는 애초 심장병치료제로 개발되었으나, 발기에 영향을 미치는 부작용으로 인하여 새로운 개념을 약물로 다시 태어났고, 면역억제제인 미녹시딜 역시 머리에 잔털이 나는 부작용으로 인하여 새로운 약물이 된 사례들이 이러한 재활용신약(drug repositioning)의 가능성을 증거하고 있다.

바이오의 복고는 이보전진이다

2000년의 게놈프로젝트는 70년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던 것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러나, 2008년에 다시 등장한 Genomics는 도로 인근의 마을을 연결하고, 마을간 물류의 이동을 가능케 한다.

2008년 바이오의 복고 바람은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인프라의 성과에 기반한 컨텐츠의 확보, 다시 그에 동조한(feedback) 인프라의 다양화 및 구체화를 의미한다.

생명은 단순한 물질의 합일 수 있지만, 무한대에 가까운 물질과 물질 사이의, 정보의 네트워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08년 겨울 바이오에도 복고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이 바람은 맞춤의학시대를 향한 이보전진의 바람이다.

/산은캐피탈 벤처투자실 팀장 column_jsshi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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