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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릴레이 인터뷰]구영배 G마켓사장


안녕하세요,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 코너입니다. 은행가에서 정보통신 벤처기업 CEO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성호전자 박환우 사장의 경영이야기는 성공을 꿈꾸는 샐러리맨들이 곱씹어볼만한 스토리인 듯합니다.

113번째 릴레이인터뷰는 국내 전자상거래시장 부동의 1위이자, 시가총액 1조원대의 나스닥 상장기업으로 유명한 G마켓 구영배(41) 사장입니다.

인터파크 초창기 멤버출신인 구 사장은 벤처산업계에 입문한지 6년여만에 G마켓을 일약 세계적 전자상거래업체로 일궈내며 세계 전자상거래 시장의 '빅가이'로 떠오르고 있는 CEO입니다.

구영배 사장의 사업이야기를 통해 G마켓이 단기간내 국내 전자상거래시장을 평정한 비결이 무엇이고, 구 사장이 어떤 성공노하우를 갖고있는지, 그의 벤처사업이야기를 살펴보시죠.


'창업 5년여만에 국내 온라인 쇼핑몰 1위 등극.' '창업 6년여만에 나스닥 상장, 시가총액 1조원달성.' '온라인 전자상거래 시장의 숨은 실력자.'

G마켓 구영배 사장은 2006년 일약 벤처산업계 최대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다. 어떤 업종보다도시장 선점의 효과를 극복하기 힘든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직원 30명에서 출발, 불과 창업 6년여만에 국내 온라인 쇼핑몰 '넘버 1' 절대강자로 등극한 G마켓의 성공신화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는 한 눈에도 꼼꼼하고 치밀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자상거래, 온라인 쇼핑몰 시장에 관한 그의 감각과 노하우는 명쾌하기 그지없다. G마켓이 왜 이 바닥에서 단기간내 1위에 등극할수 있었는지를 '두부 칼베듯' 단도직입적이고 명료하게 설명한다.

구 사장은 특히 온라인 고객의 니즈와 하루 60만건의 거래가 이뤄지는 초대형 쇼핑몰 사이트의 운영노하우에 관한한 독보적이고 놀라운 사업적 감각을 자랑한다.

평소 자랑하고 내세우기를 싫어하는 스타일이지만, 그는 쇼핑몰 G마켓운영 노하우에 관해서는 아주 노골적이면서도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다. 어떤 자본력과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경쟁업체와 비교해도 시스템운영 능력면에서 앞설수 있음을 수차례 강조한다. 그의 이런 자신감은 오랜 경험과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나온 듯하다.

G마켓은 2004년 출범한 오픈마켓의 선두주자. 지난해를 거래금액 2조2천억원대를 기록하며 옥션을 처음으로 넘어서며 명실상부하게 국내 최대 쇼핑몰로 뛰어올랐다. 2006년 나스닥에 상장, 주당 20달러선에 거래되며 시가총액 1조원을 돌파,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음했다.

◆ 인터파크 창업자 이기형 회장과의 운명적 만남

"삼성SDS에 다니던 친구한테 사람 좀 구해달라고 했더니, 괜찮은 후배가 있다며 소개를 시켜주더라구요. 그 사람이 바로 구영배 사장입니다. 제가 참 운이 좋았던 거죠."

이기형 인터파크 회장의 회고. 구영배는 1999년 8월 중순, 대학선배의 소개로 이 회장을 운명적으로 만난다. 다니던 미국회사를 그만두고 귀국, 사업구상중이던 구영배는 이 회장 특유의 호방한 제안에 이끌려 결국 8월말 인터파크에 합류한다.

자원공학과 출신인 구영배 사장은 91년, 미국 석유탐사시추회사인 슈름버거에 입사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말이 다국적기업이지, 사막과 망망대해 등 오지를 오가며 석유탐사에 매달리는 혹독한 삶의 연속이었다.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야 하는 힘든 여정이었다.

전세계를 누비며 석유를 탐사하고 유전을 개발한 구영배는 1999년 퇴사할때까지 무려 8년간 중동의 사막지역과 인도· 오만 등 인적이 드문 오지를 누비고 다닌 '거친 석유탐사 전문가'였다.

덕분에 글로벌 기업의 문화와 글로벌스탠더드를 체특한다. 특히 50도를 오르내리는 사막에서의 육체적 한계를 견뎌낸 구영배는 당시 경험덕에 왠만한 고생쯤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변모한다.

인터파크 입사 당시, 그는 전자상거래 문외한이었다. 당시 인터파트는 규모는 제법 컸지만, 수익을 내지는 못하는 구조였다. 생존을 위해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시도하는 때였다.

99년 당시는 기껏 다음커뮤니케이션즈와 골드뱅크 정도만이 e비즈 기업으로 명함을 내밀던 시절이었고,이들 역시 이렇다할 수익모델이 없었다.

그가 인터파크에 합류한 99년 그해말은 벤처버블이 꺼지고,닷컴기업이 애물달지로 전락하면서 "인터넷비즈니스, 과연 가능한가?"하는 비관론이 대세를 이룰때였다.

인터파크 내부에서는 "기존 전자상거래사업은 한계가 있으니, 쇼핑몰을 주식시장의 주식거래처럼 바꾸면 어떨까?"하는 논의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G마켓전신인 '구스닥' 모델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경매와 역경매'를 합친 개념의 신사업이었다.

구영배가 전자상거래사업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을 시작한 것은 99년말 구스닥팀장을 맡으면서부터. 그가 내린 결론은 미국 현지진출이었다. "구스닥모델은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해 기획을 했습니다.당연히 미국에서 사업을 해야한다고 판단했죠."

2000년 4월 별도 독립법인으로 출범한다. 구영배는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미국법인 직원수는 사장포함, 달랑 2명. 구영배의 첫번째 좌절이 시작된다.

"가보니 되는 게임이 아니더라구요. 돈이 문제였죠. 인터넷 버블이 꺼지면서 투자가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었죠. 대규모 현지투자를 유치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그해 11월, 미국 진출한지 7개월여만에 철수했다. 귀국길 비행기속, 머리가 텅 빈것 같은 느낌이었다. 미국 진출도, 비즈니스도 결코 만만찮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때부터 구영배의 처절한 '구스닥일병 구하기' 모험기가 시작된다.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B2C 닷컴기업은 완전 찬밥신세로 전락했고, 투자자들의 관심은 오로지 B2B 기업뿐이었다.

B2C모델인 구스닥의 펀딩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 것. 인터파크 역시 과감하게 투자해줄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구영배는 이때부터 끝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CEO로써 구영배의 잠재력과 열정들이 이 즈음부터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2001년 10월, 구스닥 대표이사를 맡은 구영배. 그는 무서운 속도로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들을 끝없이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구스닥 사업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죠. 인터파크가 아마존 모델이라면, 구스닥은 세계 최대 온라인경매사이트인 이베이와 역경매사이트인 프라이스라인을 합쳐놓은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전 전제(前提)에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컴퓨터, 전자제품의 경우, 상품표준화가 돼있기 때문에, 복수의 판매자가 상품을 올려놓고 비딩(공개가격경쟁)을 통해 판매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셀러들이 비딩을 하지 않았던 것.

구영배는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사전전제들이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하자,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대안을 찾는데 모든 열정을 쏟는다. 머리를 맛댄채 수없는 밤을 새며 고민했다.

생각나는 대로 시도했다. 그야말로 뭐가 답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끝없이 시행착오를 거치는 처절한 '막가파식' 도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중모색은 2002년까지 이어진다.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수익은 커녕 계속 투자만 하는 '돈먹는 하마'였다.

앞날이 불안한 30명 남짓한 직원들은 인터파크와 합치자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대안을 찾기위한 2년여간의 처절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구스닥 사업모델은 전혀 비전이 없었고 사기를 잃은 직원들은 '패잔병'의 모습 그대로였다.

인터파크 입장에서는 구스닥에 추가 투자를 해줄수도, 그렇다고 합병을 할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입장이었다. 만약 인터파크가 폭발적인 활황기를 맞으며 돈이 넘쳐났더라면, 구스닥의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고, 구스닥의 나스닥신화는 애당초 잉태조차 되지 못할 상황이었다.

구영배는 이런 탈출구가 없는 절박한 상황속에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경영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배수진을 친 구영배는 2003년, 구스닥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세계 최초로 새로운 전자상거래 방식을 찾아낸다.

그가 찾아낸 놀라운 방식은 세계 전자상거래시장의 패러다임 자체를 뒤바꾸는 신대륙이었고, 사이트는 단박에 일약 세계적 쇼핑몰로 우뚝 서는 대박을 일궈낸다.바로 G마켓이었다.

◆ 구영배의 놀라운 발상, '오픈마켓'

"사장님, 의류 하루 거래량이 3천건을 넘어섰습니다." 2003년 말, 구영배 사장은 직원들의 트래픽 보고자료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이때 '동대문표 의류'를 떠올리며 무릎을 쳤다.

이에앞선 2003년 가을, 구 사장은 대결단을 내린다. "e커머스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문제는 기존 비즈니스모델로는 안된다는 겁니다. 기존의 사업모델은 물론, 정책, 구조 등 모든 것을 다 뜯어고쳐야 합니다."

구스닥을 접고 구영배가 내린 대결단은 모든 걸 개방, 모든 셀러는 제한없이 물건을 팔고, 반대로 모든 고객 또한 아무런 제한없이 물건을 사는 이른바 '오픈마켓'이란 개념이었다. 홈쇼핑을 통해 의류가 많이 판매되는 것을 보고, 의류 상품을 시험삼아 올렸다. 예상을 깨고 엄청나게 팔려나갔다.

"그 전에는 쇼핑몰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옷은 입어보고 사야한다는통념때문이었죠." 곧바로 의류 마케팅에 사활을 걸었다. 사이트 플랫폼을 의류상품에 초점을 맞춰 리뉴얼했다. 몇천원에서 1만원미만짜리 옷들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2003년초 500건도 안되던 하루 거래건수가 그해 연말에는 3천 건을 넘어서며 수직상승했다. 트래픽 추이를 살피던 구 사장은 동물적 감각으로 동대문상가에 유통되는 '동대문표 옷,' 속칭 'B브랜드'에 '블루오션'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이러한 통찰력은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역발상이었다.

구영배의 '블루오션'을 찾아내는 사업감각이 얼마나 탁월한지는 당시 대형 쇼핑몰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금새 이해할수 있다. 당시 대형 온라인 쇼핑몰들은 하나같이 판매상품의 품질관리가 가능한 대형벤더를 중심으로 상품을 소싱, 판매했다. 의류분야는 반품 등 고객클레임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품질을 보증할수 있는 대기업 브랜드의류만을 고집했다.

동대문표 상품과 동대문 셀러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실제 당시 최대 쇼핑몰 옥션은 중고제품과 컴퓨터, 전자제품에 집중했고, 2004년에는 자동차상품에 전력투구했다. 인터파크 역시 2004년에는 도서와 컴퓨터, 전자제품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즈의 디앤숍은 대형벤더들에게만 의류상품 판매의 기회를 제공했고, CJ, GS이숍, 인터파크, 옥션 등 대형 쇼핑몰들은 하나같이 비싼 고가 브랜드의류만을 판매하는데 전력투구했다. 이들은 품질관리가 쉽고,비용이 들지않는 '대형벤더'에 맡기는 체제를 고수했다.

대형 업체들은 무엇보다 온라인 의류시장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고, 특히 성장세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과소평가했다. 사실 이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란 사실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당시 의류하면 반품과 클레임이 가장 많은 분야로 인식했고, 때문에 1만원미만 싸구려 옷들을 온라인 판매한다는 것은 품질관리와 고객센터 관리비용측면에서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쇼핑몰들은 누구나 동대문 의류상품을 부담스러워했죠."

하지만 구영배는 거꾸로 생각했다. 그는 '오픈마켓'이란 트렌드를 내세워 동대문표를 끌어들이는 놀라운 역발상을 사업모델로 잡았다. 그는 온라인 의류마켓을 정확하게 찾아냈고, 그 성장성을 간파했다.

구영배의 앞선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옷을 어떻게 온라인상에서 살수 있을까하는 선입견은 눈녹듯 사라졌고, 1만원대 안팎의 저가 옷들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G마켓의 하루거래건수는 2004년 들어 4,천건을 넘어서더니, 연말께는 1만건을 돌파하는 등 연일 파죽지세를 이어갔다. 2004년 연간 총 거래액은 단숨에 2천200억원대를 돌파했다.

"케이블TV 홈쇼핑을 통해 의류상품에 대한 비대면(非對面) 구매훈련이 어느정도 된 상태라,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저항감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또 의류가격이 대부분 1만원미만이라 가격 부담이 없다보니, 너도나도 구매하는 환경이 조성됐죠."

주문이 폭주하면서 시스템은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해 늘 다운 일보직전이었다. 대형 쇼핑몰과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이때부터 'G마켓' 경계령과 함께 'G마켓' 벤치마킹 열풍에 휩싸였다.

구영배, 그는 누구인가
66년생, 전남 구례생.서울대 자원공학과 졸.미 석유탐사시추회사 슈럼버거 출신.99년 인터파크 구스닥팀장. 2001년 G마켓 대표이사. 국내 전자상거래 1세대중 선두주자. 강한 집중력과 꼼꼼하고 탁월한 분석력의 소유자.매우 합리적이면서,빠른 의사결정과 강한 추진력이 강점.소탈하고 격의없는 경영스타일.
취 미골프
감명깊게 읽은 책Good to Great(위대한 기업을 넘어)
존경하는 CEO마이크로소프트 빌게이츠
친한 IT맨인터파크 이상규 사장, 황창엽 모빌리언스 사장
10년후 모습글로벌 기업 G마켓의 확장을 주도하고 있을 것이다.

◆ G마켓의 이유있는 독주

"오픈마켓 시장을 선점하라." 2004년, 대형 쇼핑몰들은 너도나도 G마켓의 '오픈마켓' 따라하기에 나선다.

인터파크는 2004년 5월부터 오픈마켓을 시작했고,GS이숍 역시 2005년부터 오픈마켓사업에 수백억원대의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한다. 옥션, CJ 등 내로라하는 대형 쇼핑몰들 또한 오픈마켓 선점에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거대 대기업과 대형 쇼핑몰 선발주자들의 수백억원대를 쏟아붓는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오픈마켓 고객들은 G마켓에 더 많이 몰리는 트래픽 '쏠림현상'은 계속됐다.

이유는 대다수 대형 쇼핑몰들이 시스템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 즉 인터페이스에서 많은 격차가 발생한 것.셀러들의 경쟁체제를 이끌어내고, 셀러와 구매고객 모두 편하고 쉽게 판매하고 구매하는 시스템을 단기간내 개발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쇼핑몰 초기화면을 보면 매우 단순하고 심플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뒷단의 운영프로그램은 상상하기 힘들만큼 매우 복잡다단합니다. 이런 시스템적인 고객관리 노하우는 1, 2년만에 터득할수 있는게 아닙니다. G마켓에 고객이 몰리는 것은 인텔리전스한 시스템 때문입니다."

그는 모멘텀이 무섭다고 진단한다. "고객과 판매자가 정말 편하게 상거래를 하고,불편함이 있으면 곧바로 찾아내 해소하는 일에 몇 년간 투자했습니다. 이는 100억, 200억원 쏟아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들 G마켓 기능을 따라하지만, 이는 겉만 따라할뿐이라는게 구 사장의 평가다. 오프라인 대기업 및 대형 쇼핑몰들의 물량공세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구 사장은 강한 자신감은 오랜 경험을 토대로한 사이트운영 노하우에 있다.

"G마켓 시스템은 전자상거래시장에 관한한 세계 최고수준임을 단언할수 있습니다. 이베이와 아마존을 다 합쳐놓아도 복잡성과 인텔리전스한 기능에서는 G마켓이 단연 앞섭니다."

이를 테면, 고객들이 수백, 수천벌의 의류상품을 검색하며 가격과 스타일을 찾을 경우, 찾기도 힘들고,이미 살펴본 상품을 다시 찾기는 거의 불가능한 등 헷갈리기 일쑤. 하지만 G마켓은 고객들이 이런 불편없이 쉽게 찾고,또 이미 살펴본 상품 또한 헷갈리지 않고, 금새 다시 찾을수 있는 지능형 기능들을 대거 제공하는 것.

무대가 세계시장이 아니라 스케일은 작지만, 정밀성과 시스템의 유연성 등 동일한 조건에서는 세계 1위적인 요소를 여럿 갖추고 있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G마켓의 거칠것없는 확장은 2004년 11월 세계적 투자회사인 미 오크벤처로부터 76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거침없이 이어진다. 이를 통해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확충,본격적인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기 시작한다.

2004년말 1만건을 달성했던 G마켓의 하루거래건수는 2005년중반, 무려 하루 60만건을 돌파하며 연간 1조원대의 거래액을 달성한다. 2005년 11월부터 부동의 1위였던 옥션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G마켓의 신화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G마켓은 2006년 2조2천억원 대의 거래액을 달성, 옥션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국내 '넘버 1' 쇼핑몰로 등극한다. 그리고 그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벌어지는 파죽지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간 수백억원대의 투자를 단행했던 대기업 및 대형 쇼핑몰 들 역시 단순한 투자를 통한 G마켓 따라잡기는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분위기로 일순 돌아섰다. 이들 대형 쇼핑몰들은 지난해부터 '숨고르기'로 급선회하는 등 사실상 G마켓과의 양적승부를 미룬 상태.

G마켓은 2006년 6월,국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나스닥 상장에 성공, 시가총액 1조원대의 글로벌기업으로 발돋음하게 된다.

2003년말,통장잔고가 바닥난 상황에서 기존 표준화된 온라인 상품거래소인 구스닥(Goodsdaq)을 포기하고 새로운 오픈마켓모델인 G마켓을 런칭했을때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다시는 반복하지 싶지않은 고통의 세월이었다.

런칭이후 폭증하는 트래픽에도 불구하고 서버를 증설할 돈이 없어 시스템이 죽어버릴때의 참혹함도 견디기 힘든 ‘자금과의 전쟁’이었다.

자금도 비전도 없는 상황에서 2년여를 버틴 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G마켓 성공비결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사업모델 자체가 매우 확장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의류,패션분야의 잠재력을 가장 먼저 간파했다는 점,차별화한 사이트운영노하우 등 세가지로 압축한다.

G마켓을 불과 3년여만에 국내 '넘버 1' 사이트로 일궈낸 구영배의 놀라운 경영수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놀라운 직관과 지칠줄 모르며 밀어붙인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 구영배의 성공론

두번째는 바닥에서 다진 실전경험을 토대로 마케팅에 나서야한다는 '실전 전투력'을 갖추는 것이란다. "사전에 분석하고 결과를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사업을 하는 것은 많은 허점을 동반합니다. 오랜 경험과 실전을 통해 고객의 니즈를 파악, 접목시킨 현장중심의 모델을 갖고 시장에 접근하는게 핵심입니다."

세번째는 집중력을 꼽는다. "능력은 집중력에서 나옵니다.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합니다. 집중력이 핵심입니다."

구 사장은 마지막으로 '끈기'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옵션(대안)이 없어야 합니다. 많은 창업자들이 불안한 나머지 많은 옵션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끈기를 저해합니다.배수진을 치고, 대안이 없어야 합니다."

그는 조직원 각자 성공할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리더의 역할이라고 지적한다.직원들에겐 늘 합리적인 창의성과 열정을 주문한다.

G마켓 구영배 사장은 국내 온라인상거래 시장의 역사를 새로 쓰는 개척자였다. 사업초기부터 글로벌을 목표로 기업을 일군 구 사장은 나스닥상장을 계기로 세계 전자상거래 시장의 빅가이이자 글로벌 CEO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구영배 사장은 G마켓 성공의 비결은 그동안 헌신적으로 일해온 직원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업의 성공 역시 사람이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얼마나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평가하고 보상을 해주느냐하는 평가보상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인터넷 벤처기업에서는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일때만 성공할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김광일 객원컬럼니스트(GCM 대표이사) goldpar@gc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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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마켓,어떤 회사인가
설립일2000년 4월 www.gmarket.co.kr
자본금43억원
직원수 530명(콜센터 직원제외)
사업분야온라인 오픈마켓(전자상거래,온라인경매)
경영목표5년내 미국,일본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메이저 쇼핑몰로 등극
매출목표2007년 총 거래목표액 3조원(매출액은 통상 총거래액의 7%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