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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릴레이 인터뷰]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사장


 

안녕하세요,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코너입니다. 디스플레이테크 박윤민 사장의 창업이야기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자신이 한평생 열정을 바쳐 터득한 전공분야에 도전했을 때 가장 성공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인터뷰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역량에 가장 적합한 분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사실과, 탄탄한 인적네트워크 역시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임을 보여주는 인터뷰이기도 합니다.

박 사장이 추천한 108 번째 릴레이인터뷰 주인공은 통신 네트워크장비분야 1위기업인 다산네트웍스 남민우 사장입니다. 박 사장은 남 사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경영능력은 물론 파워풀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전천후 CEO입니다.강력한 카리스마를 통해 뛰어난 관리능력을 갖춘 경영자입니다."

두 사람은 모대학 경영자 과정에서 만나 알게된 후 절친하게 지낸다고 합니다. 다산네트웍스 남민우(44) 사장이 어떤 면에서 전천후 경영자인지, 그의 16년에 걸친 벤처사업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특히 다산네트웍스는 회사 존폐의 기로까지 몰린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고 극적으로 회생한후, 살아남은 기업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어 주위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5년간의 혹독한 구조조정기를 거치면서 한아시스템, 미디어링크 등 선두권기업들이 대부분 도산, 사라진반면, 다산네트웍스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덕에 시장점유율 1위는 물론, 시장호황까지 겹쳐 제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기 때문.

4년간 누적적자가 500억원규모를 넘어설만큼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던 다산네트웍스는 2004년, 극적으로 지멘스로부터 500억원의 투자를 유치, 인수합병하는 대변화를 시도한 끝에 2년연속 150억원대의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지멘스가 노키아에 인수되면서 다산네트웍스는 이제 세계 1위 휴대폰회사인 노키아계열 IP솔루션 전문기업으로 새롭게 탄생하게돼 더욱 주목을 끌고있다.

창업자 남민우 사장은 1년내내 노타이 차림일 정도로 매우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다.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대통령주재 CEO간담회에도 노타이로 참석할 정도로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충 빗어넘긴 헤어스타일하며 강인한 인상은 다부진 전투력의 소유자임을 한눈에알수 있다. 실제 남 사장은 강한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기술트렌드와 시장 예측력에 관한한 그의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독보적이다.

특히 통신장비분야의 기술적 이해도와 시장을 보는 안목은 단연 국내 최고수급이다. 그는 매우 자존심 강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16년차 베테랑 CEO답게 시장의 흐름과 전망을 짚어내는 그의 터치에는 고수의 내공이 물씬물씬 묻어난다.

91년 설립, 창립 16째인 다산네트웍스는 2004년 지멘스에 인수합병된 네트워크장비개발 전문회사로, 올해 1,50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는 기술력있는 유망기업이다.

◆ 온실속의 화초가 세상밖으로 뛰쳐나온 까닭은?

"여보, 다시 대기업에 들어가요. 명문대를 나온 당신이 오퍼상에서 이게 뭐예요."

89년 어느 겨울밤, 그날도 부부싸움에 지친 남민우는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대기업을 뛰쳐나온 남민우는 장비영업을 시작한지 6개월여만에 깊은 좌절과 극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고있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인 남민우는 83년말, 전공에 걸맞게 대우자동차에 입사,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부평연구소에서 한 일은 자동차개발에 필요한 각종 전자, 계측, 제어장비 개발업무.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그는 훗날 마이크로프로세서, 전자제어장치분야에 관한한 국내 손꼽히는 전문가로 발돋음한다. 남민우는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Z80'을 비롯해 지금까지 나온 30여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모두 섭렵한 국내 마이크로프로세서 1세대 엔지니어다.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 각종 제어장치,계측장비를 직접 개발했다. 통계와 연산을 위해 직접 프로그램을 짜는 일은 다반사였고, '헥사코드'로 불리는 숫자를 이용, 머신랭귀지 역시 직접 개발할 정도였다. 컴퓨터원리, 구조에 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대기업 체질이 아니었다. 6년간 근무하면서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이 출세하고 고속승진하는 '처세술 만능주의'가 횡행하는 걸 보고, 갈등을 겪는다.

이런 와중에 날라든 달콤한 '러브콜'. 수입장비를 함께 국산화하자는 제안에 그는 미련없이 사표를 던진다. 하지만 그 것은 순진하기 그지없는 판단이었다. 덜커덕 던진 사표는 그가 인생 최악의 밑바닥생활을 시작함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수입오퍼상이 명문대출신의 기술력있는 엔지니어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던진 감언이설에 속아넘어간 것. 89년 봄, 잘나가던 대기업 엔지니어가 하루아침에 직원 6명 남짓한 구멍가게수준의 외국계 대리점 SE로 변신한 것.

그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파악하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따뜻한 온실에서 갑짝스레 혹한이 몰아치는 허허벌판으로 뛰쳐나온 그는 앞으로 닥칠 고통스런 세월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이때부터 인생의 쓴맛 단맛을 두루 겪는다. 한순간의 실수로 힘든 오퍼상 영업맨 생활을 시작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이때부터 인생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세상에는 진실만 있는게 아니라, 거짓도 있고, 술수와 냉대, 질시도 있음을 그는 직접 체험을 통해 알게된다. 처절한 좌절과 고통스런 세월은 그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벤처창업에 나설수 밖에 없도록 남민우의 운명을 재촉하고 있었다.

◆ 고통과 회환의 세월

"남 선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요즘 뭐하세요?",

"응, 여기 근무해? 바빠서 나중에 다시 연락하께"

90년봄, 대기업 연구소에서 대학후배와의 우연한 조우에 당황한 남민우는 어색한 만남을 뒤로한채 황급히 고객사 정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대우자동차 퇴사후 입사한 곳은 직원 6명 남짓한 독일 장비회사의 국내 대리점. 그가맡은 일은 판매한 장비유지관리와 기술영업. 대기업에서 잡짝스레 대리점 영업현장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남민우는 큰 충격을 받는다.

냉엄한 현실속에 자신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수없이 절감한다.

"순수한 마음에 나왔는데, 세상은 정말 험하더라구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장사꾼의 모습에 놀랐습니다"

평소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남민우. 하지만 그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대기업 개발자 비위를 맞춰가며 장비를 팔아야하는 SE에게 남은 것은 '오기'뿐이었다.

뭔가 부탁할까봐 지레 겁먹고 거리를 두는 후배들을 접하면서 그는 씁쓸한 회한을 수없이 느껴야 했다. 마음의 상처는 깊어만 갔다. 매일 야근에 궁핍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미국계 회사 국내 대리점 2군데도 거쳤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너무 힘들어 다시 대기업에 입사할까 몇번이나 고민했지만,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창피해서' 갈수가 없었다. 남민우는 그렇게 2년간 밑다박을 훓으며 SE로써 거칠고 힘겨운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 힘든 세월은 엄청난 고통과 경제적으로 궁핍한 수험료를 치르게 한 대신 남민우에게 영업의 노하우와 인적네트워크를 쌓게해준 것은 물론,그를 더욱 강하고 단단하게 만든 '담금질의 기간'이었다.

그 혹독한 담금질은 훗날 남민우가 벤처창업에 나서 당당히 성공반열에 오를수 있게한 원동력이자, CEO 남민우의 경쟁력을 결정지은 최고의 스승이었다.

◆ 처절한 시련, 운영처럼 다가온 창업

"남민우씨, 레디시스템 한국지사를 별도 설립, 창업하세요"

2년간 영업현장을 누비며 거칠게 밑바닥생활을 해온 그에게 뜻하지 행운이 찾아든 것은 91년초.

리얼타임 OS인 'RTOS'개발회사 미국 레디시스템의 창업자 '레디'사장은 기술적 이해력이 뛰어난 남민우에게 레디시스템 한국지사를 맡길테니, 독립해보라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RTOS는 전전자교환기(TDX)개발용 SW로, 산업용 컴퓨터 OS. 당시는 TDX개발에 모든 통신장비회사가 승부를 걸고있던 터라, 남민우는 RTOS의 가능성을 감지했다.

통신장비 개발용역만 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91년 3월, 독립했다. 서울 삼성동 한전 뒤편에 20평짜리 사무실을 마련했다. 직원은 4명. 2천만원짜리 전세집에 살던 그는 은행 다니는 친지도움으로 3천만원을 융자받아 창업자금을 마련했다.

한달 운영비 500만원, 6개월이면 끝나는 자금이었다.

"역시 자본주의가 무섭더군요. 그때부터 잠을 잘수가 없더라구요.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게 되더라구요."

주 고객사는 TDX를 개발하던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해 KT, ETRI 등 대기업과 연구소였다. 하지만 잠재 고객사는 이미 2년간 갈고 닦아놓은 자신의 영업현장이었다. TDX를 개발하는 대기업에 SW를 납품한후 기술지원과 개발용역을 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91년 첫해 바로 흑자를 냈다. 처음에 돈은 RTOS교육으로 벌었다. 외부 개발자 요청으로 시작한 RTOS교육은 인기만점이었다. 주로 RTOS, 임베디드시스템 설계, 통신장비개발툴에 대해 강의를 했는데, 늘 만원이었다.

격주로 실시, 월 300만원을 벌었다. 회사운영비의 절반을 충당할수 있는 규모였다. 거처간 수강생은 무려 1천명을 훌쩍 넘었다. 남 사장이 엔지니어들 사이에 국내 최고 임베디드 SW전문가로 손꼽히는 것도 이때의 강연 경력때문.

"당시 RTOS는 미국에서 전투기용으로 사용하던 SW였습니다. 통신용으로 처음 적용했죠. 91년, 92년 당시 국내는 임베디드 SW조차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창업 첫해 은행빚 3천만원을 모두 갚았다. 첫해부터 흑자를 낸 남민우는 사업재미에 푹빠졌다. 돈이 좀 쌓이자 장비국산화에도 착수했다. 직원은 1년새 50명을 넘어섰다.이후 남 사장은 순풍에 돛단듯 순항을 이어간다.

6년내리 흑자를 내는 등 남다른 사업수완을 발휘하며 빠르게 자리를 잡아간다. 바닥생활을 하며 다져놓은 영업노하우덕에 그는 매년 수억원씩 이익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98년 불어닥친 IMF 는 그에게 다시한번 커다란 시련을 안겨준다.

남민우, 그는 누구인가?
62년 전북 익산생. 서울대 기계공학과(80학번). 국내 임베디드SW 분야 1세대 개발자출신. 10년넘게 통신회사 영업현장을 누빈 탓에 국내 손꼽히는 네트워크장비 전문가로 통하는 인물. 특유의 소신과 원칙을 중시하는 스타일.저돌적이고 강한 추진력의 소유자. 91년 벤처창업에 나서 16년째를 맞고 있는 국내 벤처 1세대 인물이다.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벤처산업계의 마당발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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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CEO특별히 없다. 하지만 현대,삼성의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과 고 이병철 회장은 기업가의 정신이 뭔지는 보여준 경영자다. 맨주먹으로 큰 그룹을 일군 두 창업자의 열정이 대한민국을 먹여살리고 있다고 본다. 벤처기업가가 그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
친한 CEO변대규 휴맥스 사장, 김영달 아이디스 사장
감명깊게 읽은 책'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배기찬 저)
10년후 모습벤처업계 원로로 활동하고 싶다. 벤처캐피탈에 관심이 있다.

◆ 남민우의 승부수

97년말 IMF가 터지면서 연일 수직 상승하는 환율시세에 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달러당 800원하던 환율은 순식간에 2,000원을 넘어섰다. 미 본사에 지급해야할 결제액은 순식간에 20억원을 넘어섰다.

순간 이렇게해서 회사문을 닫는구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해결방안이 없자, 그는 미국으로 날라가 본사와 담판을 지었다.

"천재지변이니 무조건 6개월만 지급기한을 유예해달라고 떼를 썼죠. 미국쪽에서 더 걱정을 해주며 OK 해주더라구요."

내친김에 최고수준의 개발자 12명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본사에서 '개발 노가다'를 시작했다. 초호황기를 맞아 개발인력이 부족해 쩔쩔매고 있는 미 IT산업계의 상황을 간파, 몸으로 떼워 잔금을 갚겠다는 심산이었다.

그의 파격적인 제안은 놀랍게도 통했다. 얼마나 독하게 일했으면, 1년만에 현지에서 20억원을 상환했을까? 그는 엄청난 완력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했다. IMF 혹한에도 직원은 한명도 짜르지 않았다.

2년간의 실리콘밸리 경험은 그에게 소중한 시간이었다. 초호황기의 미 IT산업을 직접 체험하면서 남민우는 IT 뉴비즈니스에 눈을 뜬다. 실리콘밸리에서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시스코, 이베이 2개사 비즈니스모델이었다.

네트워크 장비, 인터넷비즈니스 두가지 사업은 무조건 된다고 확신한 그는 99년, 귀국하자마자 네트워크장비사업에 착수했다. 이때부터 다산네트웍스는 네트워크장비 전문회사로 탈바꿈한다. 별도 투자를 통해 인터넷쇼핑몰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이미 KT등 통신회사와 오랜기간 거래해온 그로선 통신장비 수요를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ADSL가 도입되기전,모뎀을 사용하던 시절인 98년,그는 '라스' 라는 인터넷장비를 개발, 삼성, LG, 대우에 70억원가량을 판매하는데 성공한다.

99년, 드디어 라우터장비 사업에 뛰어든다. 매출은 수직상승, 2000년에는 2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코스닥에 상장, 200억원규모의 공모자금을 확보한다. 위기는 늘 잘나갈 때 찾아오는 법. 엄청나게 쌓인 현금 때문에 또한번의 결정적인 위기를 맞는다.

돈이 넘치자 겁없이 쉽게 투자하기 시작한 것.

"그 땐 정말 간이 부었었죠. 무서울게 없었으니까요. 잘나가던 벤처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쓰러진 것도 다 이 때문이었죠.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는 '코스닥등록'이라는 작은 성공을 거둔 이후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작은 성공뒤에는 반드시 큰 실패의 씨앗이 뿌려진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꼈다.

◆ 끝없는 시련,남민우의 대결단

2003년말, 추운 어느 겨울밤, 남 사장은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입술을 매만지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불과 몇 달후면 운영자금마저 바닥날 상황에서 현재의 안개속을 헤쳐나갈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4년간 500억원이 넘는 자금을 다 쏟아부은 상태였다. 몇 개월을 뜬눈으로 보내던 나날이었다. 희망을 잃지 않으면, 길이 있는 법. 2004년초,지멘스에서 뜻밖의 연락이 왔다.

IP기반 DSLAM 장비를 개발한 다산네트웍스의 IP기술력을 높이산 지멘스가 전격적으로 투자를 제안해온 것. 2004년봄, 지멘스가 500억원을 투자, 1대 주주로 나서는 인수합병딜이 성사되는 순간, 남 사장은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지멘스에서 러브콜이 온지 불과 석달만에 딜이 끝났기 때문. 지멘스와의 입수합병은 5년간의 극심한 사업부진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기업공개후 과감한 투자를 한 것도 문제였지만, 2001년부터 시장이 급랭하기 시작한 게 치명적이었다.

통신회사들이 투자를 동결, 시장자체가 완전히 없어지다시피한 것. 2001년부터 4년내리 적자를 기록하면서 500억원을 모두 쏟아붓고도, 자금은 끝없이 들어가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도산할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R&D에 수백억원을 쏟아부은 그의 결단력은 결국 인수합병을 이끌어낸 승부수로 이어진다.

합작사를 만들자는 지멘스의 요구에 1대주주로 나서라고 요청했다.

"그땐 회사가 죽느냐 사느냐하는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에, 1대 주주 자리에 연연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오직 생존만 생각했죠."

그는 다산네트웍스가 글로벌기업으로 자리를 잡을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보고, 과감히 배팅을 했다. 그의 대결단에 힙입어 쓰러져가던 다산네트웍스는 2005년을 기점으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한다.

2005년에 1,200억원의 매출에 17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 흑자전환에 성공한다. 투자유치한 500억원의 현금은 현재 고스란히 남아있다.

올해 역시 1,500억원의 매출에 150억원규모의 흑자를 낙관하고 있다. VDSL 장비 수주가 본격화하고 있고, IP전화기와 IP셋업박스 등 신규사업도 서서히 성과를 내고 있다.

위기상황에서 경영권을 넘기며 다국적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낸 그의 결단력은 벤처회사가 M&A를 통해 글로벌기업으로 발돋음하는 좋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 남민우의 성공론과 경영론

"사업은 힘든 과정입니다. CEO는 늘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는 "욕심내 한번 잘해봐야지"라는 생각을 했더라면 자신도 망가졌을 거라고 단언한다. 그가 말하는 욕심은 '잘나갈 때의 사업자세'를 말한다.

"잘나갈때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매사 우습게 생각하게 됩니다.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스러져간 것도 사실 이 때문이죠."

기업가의 덕목중 또하나로 '낚시론'을 꼽는다.

"무조건 서바이벌하는게 중요합니다. 생존하다보면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기회가 오면 절대 놓치지 말고 움켜잡아야 합니다."

세번째 덕목은 자기 그릇이상으로 벌리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분수론'이다.

"자신을 과대평가, 착각을 하면 실패합니다. 욕심내지 않고 분수를 지키는게 중요합니다. 헌데 잘나가면 CEO는 쉽게 착각에 빠지게 되죠."

네번째 덕목으로 밑바닥을 기어야한다는 '바닥경험론'을 내세운다. 바닥을 기고, 겸손을 배워야 한단다.

"사업은 절대 화려한게 아닙니다. 힘든 과정일뿐입니다."

남민우의 성공론은 무엇일까? 첫번째 키워드는 시장을 정확히 읽어내는 '시장우선주의'론이다.

"CEO는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할줄 알아야 합니다."

이를위해 CEO는 보따리메고 고객을 찾아 다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장을 누비고, 고객의 말을 경청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

"CEO는 절대 직원들의 말에 현혹돼서는 안됩니다. 직원들은 늘 고객사 담당자가 앞뒤 꽉막힌 사람이라든가, '정신이상자'라는 등의 불평을 수없이 쏟아냅니다. 하지만 CEO는 고객사 담당자가 왜 저렇게 얘기하는지, 그 이유를 간파해야 합니다."

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직원들은 자신의 책임과 관련, 매니저의 질타가 두려워 쉽게 거짓말을 합니다. 문제는 왜곡된 보고를 통해 잘못된 결정을 할 경우, 회사에 치명적 손해를 입힌다는 점입니다. 가장 위험한 일이죠."

매니저를 속이려는 직원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해야 한단다.

"사실과 진실은 늘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직원들은 고통을 피하려고 안이하게 처리합니다. 문제는 사소한 잘못 하나가 수만개 제품에 치명적 결함을 가져오고, 이로인해 회사가 존폐의 기로에 놓일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조업의 경우 품질 현장은 그래서 살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품질문제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경우는 매우 단호하게 처리해야 한단다.

"문제발생시 반드시 재발방지 프로세스를 도입해야 합니다. 반복되면 가차없이 도려내야죠."

성공론의 두번째 키워드는 '경쟁력'이다.

"경쟁력있는 품질과 가격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시장에서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시장은 냉정한 정글입니다."

조직관리에 대한 그만의 노하우를 들어보자. 훌륭한 인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조직관리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사람이 핵심입니다. 사리사욕에 얶매이지 않고 끌고갈수 있는 리더가 얼마나 있느냐가 조직관리의 최종 목표가 돼야 합니다."

탄탄한 팀웍과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과 조직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체 직원수는 470명. 각 사업부를 관장하는 30명에 달하는 회사의 임원들이 모두 리더라고 설명한다.

남 사장은 직원들에게 '열정'을 강조한다. 열정과 관심이 있어야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을수 있다는 것. 일사분란한 팀웍도 그가 늘 강조하는 경영철학이다. 열정과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제도와 각종 성공수당, 성과급,스톡옵션 등을 통해 참여의식을 높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산네트웍스 남민우 사장은 창업 16년째를 맞는 베테랑 CEO답게 숱한 역경을 딛고 회사를 글로벌기업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진정한 모험기업가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남민우 사장은 개인적으로 국내 벤처기업가중에서는 변대규 휴맥스 사장이 진정한 의미의 성공한 벤처기업가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유는 운이 아니라, 상황이 100% 돌변하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성장기반을 다진 뛰어난 경영능력을 증명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잘나가는 포털, 게임업계 역시 이러한 부침의 과정과 담금질을 겪고난후에도 살아남는다면 진정한 성공기업가의 반열에 오를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김광일 칼럼니스트(GCM 대표이사) goldpar@gc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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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네트웍스,어떤 회사인가
설립일91년 4월(93년 다산기연으로 재출범)
자본금77억원
직원수470명
연락처070)7010-1000 www.da-san.com
사업내역 IP-DSLAM,이더넷스위치,FTTx솔루션,TPS솔루션
경영계획글로벌 통신 네트워크장비 전문업체로 부상
매출목표1,500억원(2006년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