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동현 기자] 32년 전인 1994년 9월 27일.
경상남도 울산군 강동면(現 울산광역시 북구 강동동) 소재 육군 제53보병사단 제127보병연대 해안 경계 초소에서 조모 소위와 김모 소위, 황모 하사가 무장 상태로 부대를 이탈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2시 40분쯤 M16 소총 2정, 수류탄 6발, 실탄 80여 발 이상 등을 휴대하고 탈영을 감행했다.

조 소위는 앞서 황 하사와 공모해 소초 내의 통신선을 모두 절단한 뒤 공포탄 3발을 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대원들을 향해 "따라오는 새X들은 다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고 이내 황 하사의 승용차에 몸을 싣고 사라졌다.
대한민국 군 역사상 최초로 장교가 무장한 상태로 부대를 이탈한 것이다.
이후 일행은 약 6㎞ 떨어진 평화주유소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 소위와 합류했다. 김 소위 역시 조 소위와 탈영을 모의, 직전까지 부대 방위병과 시내에서 술을 마시며 망설였으나 끝내 숙소에서 탈영 준비를 마치고 황 하사의 차량에 탑승했다.
이 같은 전대미문의 사건에 군은 비상이 걸렸다. 군은 즉시 수천 명의 무장 병력과 헬기 등을 투입해 수색을 강화했고 탈영 간부들의 아버지들을 동원해 이들의 투항을 유도했다.

결국 사건 발생 9시간 만인 같은 날 오후 1시 20분쯤. 조 소위와 김 소위는 인근 음식점에서 부대로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고 투항했다.
황 하사는 도주를 이어가다 탈영 4일 째인 9월 30일, 인근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군과 울산 천황산에서 대치했다. 황 하사는 쫓아오는 군 차량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거나 수류탄을 계곡에 투척하는 등 거센 저항을 이어갔으나 결국 군과 아버지의 끈질긴 설득에 투항했다.
당시 여론은 "군 간부가 어떻게 무장 탈영을 할 수가 있느냐"며 이들을 비난했으나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자 180도 반응이 바뀌었다. 조 소위 등은 당시 군에 만연하던 '소대장 길들이기'와 같은 부조리에 버티지 못해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자신들보다 소위 '짬밥'이 높은 병사들에게 지속해 무시를 받아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병사들은 이들에게 "일병이나 상병 이상에겐 경어를 사용하라"며 계급을 무시한 것을 시작으로 소대장의 방에서 도박 행위를 하거나, 소대장의 발언 시 비웃음이나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결정적 계기는 사건 발생 약 한 달 전인 같은 해 8월 23일 발생했다. 당시 이모 소위가 신병을 구타하던 신모 병장을 제지했고, 이에 신 병장은 이 소위의 뺨을 여러 차례 때렸다. 이를 시작으로 당시 소초에 있던 병사 3명이 합세해 이 소위를 집단으로 구타했다.
이 소위는 이를 지휘관에게 보고했으나 중대장은 "조용히 넘어가자"며 사건을 은폐하려 했고, 소대장들의 지속적인 항의에 마지못해 신 병장 등에게 '영창 15일' 징계를 내리는 데 그쳤다. 이를 전해들은 조 소위 등은 군의 행태와 태도에 크게 절망해 탈영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 법원은 조 소위와 김 소위에게 징역 7년을, 황 하사에게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소대장을 폭행한 신 병장은 징역 10년, 신 병장을 도운 병사들은 징역 7년, 소대장의 보고를 묵살한 중대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탈영 간부들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르기까지의 사정을 참작, 이들의 징역을 모두 2년으로 대폭 감형했다.
/김동현 기자(rlaehd3657@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