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효정 기자] 정부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의약품을 늘리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유통업계와 약사회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제약업계 내부에서도 사업 포트폴리오에 따라 온도차가 뚜렷하다. 전문의약품 중심 제약사는 큰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일반의약품 매출비중이 높은 제약사들은 판로가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에 미소를 짓는 모양새다.
대한약사회는 24일 성명을 내고 "국민 건강과 안전보다 편의성에 치우쳐 이를 역행하는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와 규제완화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약사회는 "급격한 고령화로 만성질환자와 다제약물 복용자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일반의약품을 복용할 때 약사가 제공하는 전문상담과 안전관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약물 상호작용이나 부작용을 알지 못한 채 일반의약품을 임의로 복용하면 예측하기 힘든 임상적 위해가 발생할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앞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6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현재 11개에 머무는 안전상비약을 하반기 중 최대 20개까지 늘리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약국과 24시간 판매점이 모두 없는 '무약촌'에서는 24시간 운영하지 않는 소매점도 상비약을 팔 수 있도록 판매 문턱을 낮춘다. 복지부는 오는 12월 안전상비의약품 지정고시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복지부 업무보고 직후 편의점 채널을 보유한 유통업계와 소비자단체는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판매품목이 늘어나는 데다 소비자 역시 약국 대신 편의점에서 필요한 상비약을 구매할 수 있어서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편의점 상비약 판매는 단순한 편의 문제를 넘어 국민 생활 안전과 건강권, 소비자 선택권과 직결된 사안"이라며 "약사법상 허용하는 최대수준인 20개 품목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발하는 대한약사회는 편의점 판매 확대 대신 공공심야약국 운영을 늘리는 방안을 대안으로 내놨다. 스웨덴을 비롯한 해외국가에서 편의점 상비약 판매기준을 완화했다가 중독 같은 부작용 우려 탓에 기준을 다시 강화한 사례를 들며 전국 242개에 불과한 공공심야약국을 확충해야 한다는 논리다.
약사회는 "안전상비의약품 제도 부실운영을 방치한 채 정부가 품목확대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안전상비의약품 사용 안전성은 낮아지는데 보건당국 사후관리는 전혀 없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제조를 맡은 제약사들은 사업구조에 따라 입장이 엇갈린다.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 매출비중이 높은 제약사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이에 비해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을 주력으로 하는 제약사들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아 상대적으로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자사가 제조하는 품목이 신규 지정되면 매출에 도움이 되겠지만 현재 어떤 품목이 추가될지 알 수 없어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며 "과거 감기약 같은 상비약을 처음 지정했을 때도 판매채널이 확장되며 시장 규모가 커지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전문의약품을 주로 취급하는 제약업체가 받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일반의약품을 주로 파는 중소제약업체 수혜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2012년 11월 도입한 안전상비의약품 제도는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나 공휴일에도 소비자가 해열진통제와 감기약 등을 살 수 있도록 판매망을 넓힌 제도다. 약사법은 안전상비의약품을 20개 품목내에서 지정하도록 규정한다.
제도도입 당시 해열진통제·감기약·소화제·파스 등 13개 제품을 지정한 이후 지금까지 품목구성에 변화가 없었다. 현재 고시상 품목은 해열진통제 5개, 감기약 2개, 소화제 4개, 파스 2개 등 13개다. 다만 일부품목이 생산을 중단하면서 현재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은 11개로 줄었다.
/이효정 기자(hyoj@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