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주훈 기자] 10·16 재보궐 선거를 두고 원내 '우군'으로 평가되는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간 균열이 드러나고 있다. 호남 텃밭을 향한 혁신당의 탈환 의지가 커지자, 민주당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전방위적인 견제 배경에는 존재감을 키워줄 수 있다는 우려가 영향을 끼쳤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보궐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도전장을 낸 정당 간 신경전이 과열되고 있다. 현재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은 △부산 금정구청장 △인천 강화군수 △전남 영광군수 △전남 곡성군수 등 4곳이다. 이 중 야권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전남과 부산이다.
우선 혁신당이 탈환을 노리고 있는 전남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텃밭이다. 소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라고 평가되지만, 지난 4·10 총선에서 '호남 이변'을 만들어낸 혁신당은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비례 정당으로 선거를 치렀던 혁신당은 전남 지역에서 43.97% 득표율을 거뒀다.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39.38%를 얻은 것과 비교하면 '호남 불패'가 사실상 깨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곡성을 놓고 보면 민주연합 41.13%, 혁신당 39.88%, 영광은 민주연합 40.1%, 혁신당 39.46%로 집계됐다.
기초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재보궐을 경우, 투표율이 저조하고 지역 조직력이 당락을 결정하는 만큼, 군소정당인 혁신당 입장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거를 치르는 셈이다. 하지만 여러 여론조사에서 장현 영광군수 후보가 민주당 후보와 엎치락뒤치락하는 결과가 나오면서, 혁신당은 "호남 군민에게 누가 더 효도를 잘할지 야당끼리 경쟁하자"라고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은 텃밭 경쟁에 대해 패배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지만, 혁신당을 향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의 "고인물을 넘어 상하기 시작한 물" 발언과 황현선 혁신당 사무총장의 "민주당이 호남의 국힘"이라는 표현이다. 양측의 자제로 확전은 피했지만, 여전히 신경전은 이어지고 있다.
'공정 경쟁'을 내세운 혁신당은 민주당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이번 민주당의 행보가 텃밭을 탈환 당할 수 있다는 위기론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혁신당 관계자는 <아이뉴스24>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텃밭을 뺏길까 봐 견제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만큼 자신감이 없는지 의문"이라면서 "호남 유권자들도 경쟁을 통해 더 좋은 후보를 선출하고 싶은 마음인데,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당 후보를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 내부에선 이번 선거 기조를 '윤석열 정권 심판론'에 맞춘 것과 달리, 일부 인사의 혁신당 견제 때문에 오히려 존재감을 키워줬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재보궐 선거는 총선과 동일한 정권 심판론인데, 방향성이 좀 달라진 것 같다"며 "혁신당을 향한 우리 당 발언이 부각되면서 대결 구도가 확대·재생산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선거를 둘러싼 정당 간 경쟁은 불가피한 만큼, 민주당과 혁신당이 신경전을 벌여도 '우군' 지위는 변함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자칫 동맹 관계가 회복되지 못할 정도로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바로 '단일화 시 승리'가 단일화 실패로 패배했을 경우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다.
현재 민주당과 혁신당은 금정구청장 단일화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부산이 국민의힘의 텃밭이지만, 여러 여론조사에선 민주당과 혁신당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하면 경쟁력이 있다는 지표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양측은 단일화 방법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고, 급기야 민주당 실무진의 '혁신당 협상 패싱'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혁신당이 재정적으로 취약한 만큼, 민주당이 의도적인 시간끌기를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정구청장 단일화 실무 협상을 맡고 있는 것은 황명선 민주당 재보선 지원단장과 정춘생 혁신당 원내수석부대표다. 정 수석부대표는 지난 19일부터 황 단장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황 단장이 여러 이유를 들어 시일을 미루면서 현재까지 협상이 이뤄지지 못했다. 급기야 정 수석부대표는 26일 본회의서 황 단장에게 협상 진행을 요청했지만, 황 단장은 '단일화는 무슨'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정 수석부대표는 <아이뉴스24>에 "연락이 전혀 없다"며 "단일화에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고, 민주당은 혁신당 후보가 사퇴하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우리는 할 만큼 했기 때문에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재정이 약한 혁신당의 사정을 노리고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이유가 어쨌든 간에 공정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의지가 있다면 협상을 해야 하는데, 언론을 향해서만 여론전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재보궐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민주당의 공세는 '위기의식'을 보여준 결과라고 분석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혁신당이 이번 영광 군수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민주당 입장에선 차기 지방선거에 큰 변화가 올 수 있는 만큼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며 "지난 대선 당시 호남에 복합쇼핑몰 논란이 불거진 것도 호남 텃밭에서 승리한 인사들의 지역 발전 기여도 불만과 연관이 있는데, 혁신당이라는 대안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텃밭이 뒤집어진다면 혁신당은 다음 공천을 잘하면 지방선거에서 이변을 만들 수 있다"며 "더욱이 혁신당 입장에선 득표율만 높아도 의미를 가지는 만큼, 최근 민주당이 드러낸 과민반응도 추격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호남에서 패배할 경우, 이 대표 리더십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이 대표 입장에선 이번 선거가 첫 시험대인데, 호남을 뺏긴다면 '사법리스크'로 벌어진 리더십 균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호남을 혁신당에 뺏긴 이후, 이 대표가 만약 (선거법·위증교사 등 혐의에서) 하나라도 유죄가 나온다면 '다음 주자를 고민해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 안팎에서 나올 것"이라며 "대세론은 유지되다가도 하나라도 흠집이 생기면 흔들리는데, 그동안 당내에서 우려가 나오지 않다가 (이번 선거 패배로) 터져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22대 국회 이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불안감이 혁신당을 때리는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며 "혁신당은 조금만 선전해도 '졌지만 잘 싸웠다' 분위기라 상관이 없지만, 민주당은 소위 '졌잘싸'를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주훈 기자(jh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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