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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통하겠다고 다가왔으면 울리지 마라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 회동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2.03.28.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 회동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2.03.28. [사진=뉴시스]

[아이뉴스24 김보선 기자] 동룡은 어린시절부터 맞벌이였던 부모님으로 인해 형들과 나가 밥을 사먹거나 친구네 집에서 밥을 먹는 게 일상이었다. 생일만큼은 엄마가 가장 잘하는 요리인 미역국을 끓여주곤 했지만, 7년 연속 보험왕이 된 엄마는 그 뒤 몇 년째 생일 미역국마저 끓여주지 않았다. 동룡은 '돈밖에 모르는' 엄마에 화가 나 홧김에 가출을 했다가 친구들에게 끌려 집으로 돌아가는데 바쁜 부모님은 아들이 집을 나갔었단 사실을 알지 못했고 화도 내지 않았다.

몇 년 전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중의 한 장면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드라마의 한컷이 문득 떠오른 건 정치팀 기자로서 요즘 거의 매일같이 마주하는 '소통'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와 물리적 거리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면서다.

6일 열리는 임시 국무회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필요한 예비비를 심의·의결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대한 빨리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예비비를 조속히 처리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청와대는 당초 안보공백을 이유로 촉박한 시일 안에 집무실을 이전하겠다는 계획엔 무리한 면이 있어 보인다고 했지만, '소통 강화'라는 당선인 측의 이전 추진 배경을 두고는 태클을 걸 도리가 없어 보인다. 청와대 밖으로 나오겠다고 한 것이 국민 속으로 들어가고 소통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라는데, 이러한 취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엔 무리가 있어서다. 문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탈 청와대', '광화문 시대'를 말했다. 때문에 덮어놓고 반대하기 보다는 안보공백을 초래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무리하지 않는 속도의 이전 추진에 협조하는 게 현재 청와대가 취하고 있는 스탠스다.

다만 청와대도 뒤질 수 없다는 분위기다. 최소한 '소통하지 않은 정부'란 평가는 받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용산 대통령' 시대의 첫발이라 할 수 있을 이전 예비비를 의결하는 이날 공교롭게도 청와대는 북악산을 전면 개방키로 했다.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김신조 사건'(1968년) 이후 국민 접근이 제한된 청와대 뒤편 북악산 남측면을 개방함으로써, 마침내 북악산 전 지역을 시민들에게 열기로 한 것이다. 이는 2017년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밝힌 '북악산, 인왕산 전면 개방' 공약의 실천이기도 하다. 약속대로 시민들에게 공간을 돌려준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나, '왜 이제서야'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된다.

특별한 사람과 가까이서 자주 보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가까이 자주 보는데 도무지 '불통'한다면 참으로 고역스러운 일일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를 벗어나 용산으로 가고, 닫혔던 북악산 남측면이 열린다고 해서 어느날 갑자기 대통령과 국민이 온맘을 다해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건 당선인과 대통령 모두 잘 알 것이라 믿는다.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일 잘 하는 정부를 갈망한 건 모두의 마음이었겠지만 그간 '청와대를 내어 달라'는 민심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는 의문이다. 중요한 건 미친 집값과 물가, 양극화, 저성장, 저출산, 무한경쟁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삶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듣고 이를 해결할 적극적인 움직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다. 뜻이 통하고 오해가 없다면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어디에 있든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다. 멀리 있으면 멀어서라고 핑계라도 댈 수 있고, 아무 사이 아니라면 불통한다고 해서 쌍방이 서운할 것도 애초에 없다. 그런데 특별해지겠노라고 굳이 가까이 다가와선 하룻밤 보이지 않아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상대에게 무심하고 제대로 소통하지 않는다면 그땐 그저 실망에 그치는 것이 아닐 지 모를 일이다.

/김보선 기자(sonnta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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