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명화·극장·가다] 내면의 물밑에서 흐르던 차별과 선입견, '여섯개의 시선'


 

겉으로 비춰지는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국가다. 법이 있고 자유가 있으며 평등하다. 피기득권자를 위한 사회 보장제도가 있고, 각자의 개성을 살릴 의무와 자유가 보장된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내면에 깊숙이 감춰져 있던 억압과 차별의 의식. 그것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진정한 감정이라고 하면 과장된 것일까.

여섯 명의 감독들이 뭉쳐서 만든 옴니버스 영화 '여섯개의 시선'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은밀한 비리를 외면하고 싶은 우리 모두에게 바치는 작품이다.

자신조차 깨닫지 못한 채 무심코 행해왔던 무수한 차별과 고정관념의 행위들. "이런 것도 인권을 침해할 수 있구나" 하는 순간이 영화 상영시간 도중 한번은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계의 내로라 하는 여섯 명의 감독들이 '인권'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을 맡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세친구'의 임순례,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맨' '세상밖으로'의 여균동,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 '복수는 나의 것'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 '이재수의 난' '그들도 우리처럼'의 박광수 감독이 우리 사회의 인권에 대해 각자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해나간다.

여섯 개의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흔히 접하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들이다.

외모에 대한 선입견, 자식의 미래를 위한다는 이유로 자행하는 어린이 인권침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 장애인에 대한 몰이해는 영화를 보는 우리 보통 사람의 폐부를 아프게 찔러 온다.

일상화된 차별과 인권 유린의 현장은 웃음과 냉정으로 포장됐지만 부끄러움은 감춰지지 않는다. 모르고 있던 알고 있어도 애써 눈감아 왔던 우리의 세상이 영화를 통해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다.

11월 14일 개봉될 '여섯개의 시선'은 일반적인 흥행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여섯 개 중에 하나 정도는 취향에 맞는 걸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감독들의 말은 이 영화가 보다 많은 이들에게 보여지고, 그래서 한번쯤 무심코 저질렀던 행동들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여섯 개의 시선

첫 번째 여행 : 실업고 3학년 여고생의 속마음 훔쳐보기(감독 : 임순례)

그녀의 무게 The "Weight" of Her

여상에 다니는 선경은 몸무게도 많이 나가고 얼굴도 그다지 예쁘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다. 3학년이 시작되자 취업을 위해 몸매를 관리하라고 닦달하는 선생님들의 성화가 시작되고 학생들도 성형수술을 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선경은 쌍꺼풀 수술을 하거나 단식원에 가기를 원하지만 무심한 엄마는 선경의 청을 거절한다. 선경은 쌍꺼풀 수술을 하기 위해 고민 끝에 위험한 결단을 내린다.

두 번째 여행 : 가까운 미래, 너무나 모범적인 아파트 구경하기(감독 : 정재은)

그 남자의 事情 The man with an Affair

세 번째 여행 : 하고 싶은 게 많은, 웃는 모습이 선한 청년과 거리산책하기 (감독 : 여균동)

대륙횡단 Crossing

김문주라는 한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의 일상적인 사건, 감정, 기록을 열세편의 짧은 장면으로 구성한 영화. 취직을 위해 이력서에 넣을 사진을 찍으며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장면(이력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차마 고백을 하지 못하는 장면(이 감정을 알아?), 외출하려고 힘겹게 나선 김문주씨가 집으로 들어가려는 줄 착각하고 도와주는 선의의 손길(18년만의 외출), 친구와 허심탄회하게 자신들의 처지를 털어놓으며 스스로 무력해진 이유를 더듬는 장면(친구), 장애인 이동투쟁으로 잡혀간 친구를 생각하며 스스로 홀로, 광화문네거리(대한민국에서 정치 사회의 중심지)를 무단으로 횡단하는 마지막 장면은 위의 모든 장면들을 아우르며 다시 한번 장애인의 조그만 외침을 마주하게 된다.

네 번째 여행 : 교양있고 부유한 부모 밑에서, 총명하게 자라나는 아이 만나기(감독 : 박진표)

신비한 영어나라 Tongue Tie

1999년 겨울. 서울에 있는 한 명문 영어유치원에서는 크리스마스 발표회가 한창이다. 여섯 살 종우는 부모들의 바램에 부응하듯 아주 멋지게 영어로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종우의 엄마는 어쩐지 만족스럽지가 않다. 종우의 영어 발음이 외국아이들에 비해 좀 떨어지는 것 같이 들린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 현재. 종우는 한 어린이치과 수술대위에 누워있다. 약간의 아픔이 따르겠지만 L발음과 R발음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과연 엄마의 생각대로 종우의 장밋빛 미래는 순탄하게 펼쳐질 것인가?

다섯 번째 : 쿨하게 잘생긴 남자와 미스 코리아보다 예쁜 아가씨와의 데이트(감독 : 박광수)

얼굴값 Face Value

너무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그렇기 때문에 '문제'라고 여겨지지도 않는 하찮은 사건으로 '차별'에 접근한 영화. 서울의 한 병원에 위치한 장례식장의 주차장. 주차 매표 요원인 여자와 주차를 하기 위한 운전자 사이에서 시비가 붙는다. 이 여자의 직업이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남자의 생각에서 출발한 하찮은 실랑이는 결국은 '얼굴값 한다'는 수준으로까지 이어진다. 한편, 실랑이가 끝날 무렵, 영구행렬이 지나가는 차의 영정, 스치듯 내뱉는 남자의 한마디. "죽기엔 아까운 얼굴이야!"

여섯 번째 여행 : 평화와 사랑이 끝나지 않는 곳, 네팔로의 여행 (감독 : 박찬욱)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Never Ending Peace And Love

1999년, 서울의 한 섬유공장에서 보조 미싱사로 일하던 네팔 노동자 찬드라 구룽은 공장 근처 식당에서 라면을 시켜 먹는다. 뒤늦게 지갑이 없는 사실을 안 찬드라는 계산을 하지 못하고, 식당 주인은 그를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한국어를 더듬는 찬드라를 행려병자로 취급해, 결국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찬드라의 시점으로 90퍼센트 이상 촬영된 이 영화는 정신병원 의사, 간호사, 경찰, 같이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등 실제인물과 실제인물 같은 배우들이 출연한다. 정신병원 수감 후 현재는 네팔로 돌아가 있는 찬드라를 직접 만나 촬영한 엔딩이 인상적이다.

정명화 기자 dvd@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명화·극장·가다] 내면의 물밑에서 흐르던 차별과 선입견, '여섯개의 시선'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